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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Aug 13. 2023

우리나라 함부로 욕하지 마

외국인한테 너무 한국 욕하고 다니면 마음 아프다고

| 왜 우리나라 욕이 네 입에서 나와


그 친구가 한국욕 엄청 하던데


발리 여행을 부분 동행 중인 폴란드 친구 카샤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카샤가 요가원에서 알게 된 한국인 여자 A가 있다. A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어딘가에서 유학 중이고, 미국에 더 오래 체류하고 싶은데 비자 문제가 좀 있다나. 카샤의 말로는, 그 여자애가 상당히 '쿨'하고 대화도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근데 그 여자애, 한국인 엄청 싫어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엄청 나빴는데, 말을 듣는 당시에는 그게 왜 기분 나쁜지 몰랐다. 나 또한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나와서 숨 좀 고르고 있는 입장에서, 대충 그 여자 A가 느꼈을만한 불만들이 나와 같은 것이었을지 짐작해보기도 했다. 


전부 다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카샤 말로는 A가 "한국인들은 너무 과시하는 걸 좋아하고", "모든 사람들이 옷을 다 잘 입어야 하며", "패션부터 행동거지까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한국 남자들은 commitment issue가 있다고(한 여자에게 헌신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단다. 워워, 알겠어, 거기까지. 


일단 이 상황에서 내가 매우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 두 가지는, 첫째 ; 한국 사람이 한국인 욕을 외국인한테 한다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느꼈고, 둘째 ; 폴란드 여자애가 한국인에 대한 욕을 한국인인 나에게 전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도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그 여자 A와 카샤 둘 다에게 화가 났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국가의 제도적인 허점이나 사회 이슈에 대한 비판이 아닌 한국 사람에 대한 주관적이고 일반화된 욕이라서 더 그랬나 보다.




| 그래도 한국인이잖아



영화 <터미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영화는 본국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졸지에 무국적자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본국에 돌아갈 수도, 뉴욕에 입국할 수도 없는 주인공이 공항에서 거주하며 발생하는 사건들을 그린다. 비록 가상의 상황이지만, 우리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해외여행을 비롯해 우리가 숨 쉬듯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이 다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걸 깨우쳐주는 영화다. 외국에 나와 있을수록 국적은 인종이나 출신 그 이상으로 그 사람의 존재의 기반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대한민국 여권 파워는 전 세계 3위다. 227개 국가 중 189개국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비자 신경 쓰지 않고 이 나라 저 나라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간편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시간과 에너지, 금전적인 비용, 대사관에 방문하고 인터뷰하는 시간 등등 많은 비용이 생략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 점에 새삼 감사하다.


K 문화 파급력은 또 어찌나 강력하던지. 해외에 나오면 새삼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BTS나 블랙핑크를 모르는 현지인은 거의 없고, 한국인이라고 국적을 밝히면 유럽인 여행객들도 얼굴이 환해지면서 '우리 딸이 한국 엄청 좋아해!', '내 여동생 지금 한국어 배우고 있어!' 하며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옛날에 싸이 열풍으로 1차 광풍이 불었다면 요즘 느껴지는 2차 광풍은 좀 더 견고하고 강력한 느낌이랄까. 한국인이라서 덕을 봤으면 덕을 봤지, 한국인을 싫어하는 외국인을 이제까지 만나보질 못했다.


외국에 나와서 아무리 영어만 쓰고 다니고, 서양 친구들이랑만 어울려 다닌다고 하더라고 나의 정체성은 언제까지나 한국인일 것이다. 그 여자 A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카샤가 그 여자 A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우연히 마주쳤다. "그 여자애 한국인 진짜 싫어하던데"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였다. 그냥 다 싸잡아서 한국인을 통째로 싫어하신다니 그냥 가볍게 목례만 하고 피해드렸다. 난 결코 그런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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