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 섬에서 만난 세계인의 <행복 노트>
항상 행복에 관심이 많았다. 그 말은 곧,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알고 싶어 행복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다. <행복의 지도>, <행복의 추구>, <꾸빼 씨의 행복 여행>,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어이쿠, 오늘도 행복했네> 등등. 행복해지는 데에 어떤 정해진 원리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며 읽고 또 읽었다. 행복을 나름대로 정의해보기도 했다.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이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행복이라는 허상을 오랫동안 쫓아왔다. 이 학교만 들어가면, 이 회사만 들어가면, 이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얼마를 모은다면, 승진해서 월급이 늘어난다면. 원하는 걸 하나씩 이뤄가도 행복을 붙잡지 못했다는 걸 느낄 때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나갔다. 내 집만 생긴다면, 주식이 이만큼만 오른다면, 이직에 성공한다면, 고양이를 키운다면, 그러면 비로소 행복해지겠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행복은 더 멀어져만 갔다.
생각해 보면 '이걸 이루면 행복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쫓아왔던 목표를 비로소 이뤘을 때 느껴지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오로지 안도감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 내 마음에 들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정작 남은 건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갈 길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한 달 넘게 발리에 머물던 시점, 사람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길리섬에 들렀다. 도착 첫날 어느 호스텔의 4인실 도미토리에 체크인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우연히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줄스(Jules)는 29살 프랑스인 남자애였는데, 베트남 사람이었고 아기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한참 서로의 배경을 설명하던 와중, "너 이것 좀 혹시 해석해 줄 수 있어?" 하며 어떤 노트를 꺼냈다. <행복 노트>라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7개월 넘게 아시아 지역을 배낭여행 중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각자가 정의하는 행복에 대해 적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단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인이 적은 글이 있는데, 아무도 제대로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 글은 아래와 같았다.
노트를 넘겨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한 그들만의 행복을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정답은 없지만 내가 찾은 나름의 공통점은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며, 현재에 집중할 때 느낄 수 있다"였다. 그리고 내가 정의하고 싶은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책 <The mountain is you>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진정한 행복은 삶의 작은 즐거움들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따뜻한 여름날 아침의 일출, 커피 한 잔, 혹은 멋진 책 한 권처럼요. 행복은 큰 일들 뿐만 아니라 매일 일상에 스며있는 작은 만족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다소 싱거운 결말일 수 있지만,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이다.
매일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기분은 너무나 쉽게 공격당하고는 한다. 우울감에 지배당하기 직전 감사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 하여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 첫 페이지를 채우기가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데 뭘 감사해야 하는 거지? 살아있는 걸 감사해야 하나, 날씨에 감사해야 하나.' 반복되는 일상과 당연한 것들로부터 감사와 행복을 찾는 게 내겐 정말 어려운 임무 같았다.
무작정 모든 것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안 좋아 보이는 일에도 분명히 좋은 면이 있음을 발견하는 연습이 행복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비결이라면 비결인듯하다. 비 오는 날을 겪어본 사람이 해 뜬 날에 감사할 수 있고, 쨍한 날의 더위를 경험한 사람이 오래간만에 내리는 비에 감사할 수 있듯이 말이다. 쥴스와 헤어지기 전, 그의 노트에 내가 정의한 행복에 대해 적었다.
행복은 대단한 성취나 목표 달성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일상에 소금처럼 흩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