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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Oct 06. 2023

호모 사피엔스, 콘크리트 빌딩에 갇히다

이거 상당히 부자연스러운데

| 고층 빌딩이 어딘가 불편했다


한국 회사원들의 삶은 대부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해 뜰 때 건물 안으로 들어가 해가 질 때 건물 밖으로 나온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하루종일 햇빛 한 줌 못 보고 콘크리트 건물에만 갇혀있는 게 답답해서 점심시간에 조금이라도 산책하려고 식사를 빠르게 때우기 일쑤였다. 사수 선배가 식당밥을 그냥 '사료처럼 먹는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백 번 공감했다. 그렇지, 구내식당밥은 연료와도 같다.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았고, 회사에 있으면서는 바깥공기와 햇빛을 한 줌도 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울감이 자주 찾아왔다. 우울증 관련 책을 읽으니, 하루에 한 번은 꼭 햇빛을 쬐는 게 좋단다. 만성 비타민 D 부족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햇빛은 어느새 사치가 된 듯하다. 담배 피우러 나가는 사람들은 몇십 분씩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데, 잠깐 햇빛 좀 쐬겠다고 나가는 건 아직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인다. 나도 담배를 피워야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햇빛을 쬐러 밖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포기하고 한 시간 가까이 회사 근처 따릉이를 타고 무작정 달린 적도 있다. 식사 후 동기들에게 나가서 걸으면서 얘기하자며 밖으로 이끈 기억이 많다. 그럴 때마다 업무 스트레스가 급격히 줄었다. 그게 나에겐 정답이었다. 햇빛을 쬐고,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고, 많이 걷고 뛰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나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다. 쉬는 날마다 절박하게 공원과 산과 들판을 찾았다. 혼자 돗자리를 펴놓고 드러누워 책을 읽고, 사람을 구경하고, 풀냄새를 맡는 게 좋았다.


이전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소위 핫플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갈수록 틈만 나면 복작거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차를 빌려 어디든 근교로 멀리멀리 들어갔다. 호수를 보고, 등산을 하고, 수목원을 찾아다녔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맡다 보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했다.




| 고층 빌딩의 부작용


영국 가디언지에 도시환경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이 실린 적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우울감이 40% 증가했고, 조현병에 걸릴 확률은 100%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링크) 더 나아가 미국 코넬대학 교수 GW Evans팀이 저서한 <주택과 정신 건강, 2003> 논문에는 고층 거주자가 저층 거주자에 비해 정신건강이 더 나쁘다고 기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약 1,000여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층 이상 높이에 사는 거주자들이 저층 및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정신질환 증상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소개한다.


유현준 건축학 교수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많은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마당 대신 거실에서 놀고, 골목길 대신 복도에서 놀고, 학교에 가면 교실 안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고, 방과 후에는 상가 안에 있는 학원에 보내지고, 이동할 때는 좁은 봉고차에 실려서 이동하는 등, 계속해서 실내 공간에 갇혀서 자란다. 10분 남짓되는 짧은 쉬는 시간에 3층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그냥 교실에 남아있는다. 우리나라 학교 구조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짧은 시간에 학생들이 바깥공기를 마시고 자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야외공간을 활용하기 어렵다 보니 변하는 자연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더 서글픈 건, 우리는 이미 무엇이 맞는 방향인지 알면서도 환경적 여건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 자연과의 접점을 늘리기


30층을 훌쩍 넘는 아파트들이 즐비한 서울은 세계에서 고층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 1위로 선정되었다. (2019년, 가디언지) 놀랍지 않은 결과다.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도시국가들처럼, 눈 돌리면 빼곡하게 높게 솟은 빌딩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역동적으로 성장해 온 다이내믹 코리아의 발전의 산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광경이 너무 단조로워 보이기 시작한다. 똑같이 생긴 건물, 똑같이 생긴 아파트, 똑같은 상가.


모든 건물이 3층 미만으로 낮게 형성되어 있는 도시는 어딘가 모르게 숨통이 트인다. 시야 안에 하늘이 꽉 차게 들어오고,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 발리는 대부분의 숙소가 홈스테이 형태로 되어있는데, 대부분 저층 건물로 지상 접근성이 매우 좋다. 테라스에 나와 앉아 야자수 나무를 보며 옆 방 투숙객과 거리낌 없이 말을 섞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숙소 구조 덕분이다. 덕분에 자연과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카페나 식당들도 대부분 문이 안 달려있고 한쪽 벽이 아예 뻥 뚫려있어서 사실상 야외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가 내리는 소리, 거리에서 행사를 하는 소리,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 눈에 보이는 게 많으니 대화거리도 괜히 하나 더 생겨나고,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랑 대화도 가능하다.


저층 숙소는 곧 자연과의 연결을 뜻한다. 비단 발리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같은 땅덩어리 넓은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부분 주택, 높아봐야 2~3층에서 생활한다. 꼭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계단을 이용해서 지상으로 오가는 것이 매우 용이하고, 그래서 야외로 나가는 게 부담이 없다. 내 눈높이에서 높게 뻗은 나무가 보이고, 사람들이 개를 산책시키는 소리, 잔디 깎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니 몸이 땅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할 수 있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안정감을 주었다.


자연에서의 시간이 정신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회사 안에 하늘정원을 만들어 놓는다던지, 회사 캠퍼스 안에 산책길을 만들어놓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서부의 다수의 구글 오피스를 견학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구내식당이 실내와 야외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햇빛을 맞으며 식사하고 있더라. 야외 정원에서 먹는 구내식당밥이라, 먹어봤는데 두 배로 맛있다.


어떤 현실이 있는지 보고 나니, 새삼 7일 중 5일을 거의 햇빛 한 줌 못 보는 삶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더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가서 햇빛을 쬐자. 하루에 10분이라도, 귀찮아도 일단 쬐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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