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서 울었다. 영화관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안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많구나.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가 청소년기를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라일리는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팀의 코치에게, 베프 2명과 함께 훈련 캠프에 참가할 것을 제안받는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한다.
이 캠프에서 그녀는 '반드시 코치의 눈에, 그리고 고등학교 언니들의 눈에 잘 들어야 돼'라는 강한 목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건 곧 불안이라는 감정을 탄생시킨다. 불안 말고도, 쪽팔림(embarrassment), 질투(envy), 권태(ennui) 등 새로운 사춘기 감정들이 생겨난다.
영화는 3일 동안의 하키 캠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라일리는 이 안에서 베프를 버리고 '쿨해보이는' 친구들을 사귈 것인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기에서 득점을 많이 할 것인가, 3점만 따면 팀에 합격할 것인가, 하는 정말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나 짤 수 있는 전략들을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주도하는 감정은 불안이다.
불안은 위기 상황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기 계발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도 한다. 불안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원료 같은 감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불안이 너무 극심해졌을 때, 온통 불안이라는 감정으로만 뒤덮였을 때의 부작용을 청소년의 하키 경기라는 무대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 모습이 너무나 겹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순간이었다.
I'm not good enough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아 나가던 라일리에게 불안이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부족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상상력 동산(Imagination Land)이 등장하는데, 원래 유년기 시절에는 온갖 엉뚱하고 즐거운 상상들로 가득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 상상력은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짜내는 공장으로 변하게 된다.
그 안에서 불안은 '일이 잘못됐을 경우, 외롭게 늙어 죽을 거야, 고등학교 가서 친구들을 한 명도 사귀지 못하겠지, 좋아하는 하키도 그만두고 관심도 없는 직업을 갖게 될 거야, 지금 있는 친구들은 다 날 떠나겠지, 나는 웃음거리가 될 거야, 부모님도 나에게 실망할 거야' 등등, 스스로를 괴롭히는 온갖 장면들을 무한 생성해내고 있다. 불안이 우리 머릿속을 헤집어놓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곳에서 헤드쿼터에서 쫓겨난(?) 기쁨이는 불안과 맞서 싸운다. (맨날 쫓겨나...)
아니야! 라일리는 경기에서 너무 잘해서 팀에 합류할 거야. 진 팀에게 꽃도 건네줄 거라고.
그 외에, 라일리가 잘 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불안이 생성해 내는 최악의 시나리오들과 싸운다.
사실 그렇지 않나. 한 번 걱정이 시작되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일이 틀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고,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며 고생을 사서 한 경험. 다들 무수히 많을 것이다. 자기 확언과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도, 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들과 싸우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다정한 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건 잘하지 못한다. '나약한 척하지 마, 아직 갈 길이 멀어'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를 수천 번. 드디어 성과를 냈을 때는 잠깐 기뻐하고, 다시 그 성공경험은 저 뒤에 묻어놓고서는 또다시 다음 목표를 향해 몰아붙이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라일리에게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라는 자기 인식이 생겨났을 때, 그게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가장 와닿았던 장면은 하키 캠프 경기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주장 언니가 신입생 때 2점을 땄었다고 하니까, 자기는 3점을 따면 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매우 단순한 비교로 시작된 라일리의 폭주는 팀킬에 이어 베프까지 다치게 한다. 이때 공황발작같이 보이는 증상이 발현된다.
나 또한 불안과 참 질기게도 싸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장면이 참 마음 아프기도 했고 공감도 됐다. 내 마음도 어느 순간, 기쁨과 슬픔 분노 같은 생생하고 날 것의 감정들은 저 멀리 억눌러 버린 채 불안으로만 돌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효율이 좋으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낄 때에도 '괜찮아 원래 다들 이런 거야'하면서 일단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나를 계속해서 몰아붙이기도 했다.
근데 이 짧은 시간이 평생의 나의 인생을 결정할 거라는 부담감을 갖는 순간, 일을 더 그르치기 십상이다. 필요 이상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지우는 셈이다. 지금 이 상황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부풀리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이켜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게 안 되면 난 망해'라는 닫힌 옵션 속에 살아가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지난 시간 동안 퇴사와 대학원 준비를 겪으면서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다.
불안이 극도로 치달을 때면, 그냥 '나 힘들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양가적인 가치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며 수용해 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인사이드 아웃 2>로부터 얻었다. 나는 의리가 있지만 동시에 이기적인 사람이고,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정직한 사람이지만 때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좋은 딸 좋은 친구이지만 가끔은 주변을 잘 돌보지 못하고 나에게 매몰되어 있기도 한, 그런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일 뿐이다.
우리의 뇌는 너무나 간사해서, 불안한 마음이 한 번 들면 나를 지키기 위해 잘못될 수 있는 상황만 계속해서 생산해 낸다. 하지만 일이 잘못될 수 있다면, 잘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내가 못한 부분, 부족한 부분, 잘못한 부분만을 강조해 반복재생하는 건 너무 잘하면서도, 내가 오늘 하루 잘한 일, 감사하는 일, 칭찬할만한 일은 잘 떠올리지 않는다. 나쁜 것도 떠올릴 거라면 좋은 것도 균형 있게 떠올려줘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불안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도록 만든다.
나는 부족한 인간이야, 이것밖에 못해, 아직 한참 남았어, 아직 멀었어, 좀 더 해, 쟤가 너보다 훨씬 잘하잖아.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2>에서도 그렇듯, 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과 붙어있을 때 아주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이미 저 멀리 가있는 사람과 비교하며 "내가 저 사람보다 1만큼 더 잘하면 나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겠지" 하면서 단순 비교를 시전 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 간의 괴리는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려고 각자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고, 남과의 비교 대신 어제와의 나의 비교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영화는 참 귀여운 캐릭터들을 가지고 정말 깊은 내용을 끄집어내는 영화다. 소장해 놓고 돌려보고 싶은 장면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그냥, 너무 좋았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