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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Jan 19. 2021

3.1.1 단 하나의 첫사랑을 만날 것

독서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줄 소중한 존재

영어 독서가 아닌 독서 전반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초등학생 시절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시험은 늘 벼락치기로 공부했고, 꾸준히 하라고 부모님이 신청해 준 방문 학습지는 일부러 옷장 속에 숨기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늘 친구들과 놀이터나 바닷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았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첫 국어 시간.

국어 선생님은 특이하게 첫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읽으면서 나오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을 짚어 가며 퀴즈를 냈다. 뜻을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나는 모두 아는 단어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누구도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뜻을 이야기했고, 나중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모든 단어의 뜻을 대답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우리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친구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넌 어떻게 알고 예습을 한 거야?”

“예습 안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 단어들을 다 알아?”

“그냥… 알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반 1등이 내게 공부법을 묻다니.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해서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제대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난 늘 책을 읽었다.

재미있는 책을 읽다 보면 잠이 들기 너무 아쉬웠다.

어떤 날은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학교 가는 길에 책을 들고 걸어가며 읽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문학 전집 같은 것은 꽤 비쌌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전집을 새로 사주지는 않았다. 엄마가 들여오는 전집들은 주로 누군가에게 얻거나 헌책방에서 구입한, 그래서 번호가 중간에 몇 권은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88권으로 구성된 ‘에이브 (ABE) 전집’은 우리 집 최고 인기 책이었다. 당시 많은 집들에 이 ‘에이브 전집’ 이 있었는데, 언니와 나는 이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없는 번호는 친구 집에서 빌려다 읽었다.

(여기서 잠깐: 에이브 전집은 작품성이 높은 청소년 문학을 모아 번역해 동서문화사가 출판한 전집인데, 지금은 절판되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룬 문학 작품으로 구성된, 전무후무한 전집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후에 나와 언니는 기억나는 좋은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찾아서 원서로 구입하기도 했다.)



스티븐 크라센 교수의 책 <읽기 혁명 (The Power of Reading)>에는 “홈런북 (Home run book)”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책을 읽는 경험을 즐겁게 만들어 준 책.

나를 독서가로 만들어 준 바로 그 책.

새로운 세상을 눈 앞에 열어 준 바로 그 책.

첫사랑과 같은 책이다.



한국어로 된 나의 홈런북이 에이브 전집이었다면, 영어책에서는 주디 블룸(Judy Blume)의 소설들이었다. 주디 블룸은 70년대 이후 아동, 청소년 문학은 물론 성인 문학에도 많은 작품을 써낸 인기 작가다. 청소년들의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가 많아서 때로는 자가 복제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슬슬 어릴 때 보던 책들이 지겨워지던 시기에 바로 주디 블룸 책을 만났다.

약간은 자극적인 소재 – 청소년기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학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같은 소재들이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 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 흐름이 정말 신선했다. 그 시절에는 국내 청소년 문학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주디 블룸 소설로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니 그 뒤로 좀 호흡이 긴 소설을 영어로 읽는 것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읽기 혁명>을 읽다가 “홈런북” 이라는 표현을 보고 너무 공감이 되었던 이유가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책 읽기가 효과적인 언어 학습법이 되기 위한 두 가지 비법이 숨어 있다.

재미있게 읽을 것.

그리고 스스로 읽을 것.


어린 시절 이런 첫 홈런과 같은 기분, 첫사랑과 같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 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은 누구나 이런 행운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속적인 독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 행운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게 하려면?


많은 책을 자유롭고 편하게 접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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