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의 시작
상호작용이라...
사전적 의미는 차치하고, 쉽게는 서로 소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조차 쉽게 주지 않고, 모든 감각에 과부하가 걸린 아이로부터 어떻게 하면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처음 눈을 마주친 그 밤을 떠올렸다. 방법을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아이는 누워서 뒤척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을 지키고 누워 있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같이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고 칭얼대면 달래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움직임이 멈추었다. 뒤척이다 말고 갑자기 이 노래가 어디서 나는 걸까 하고 집중하는 듯했다. 노래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였다. 울면 노래를 불러서 달래주곤 했었는데, 그걸 이 한밤에 내가 시도한 것이다.
조용히 노래를 듣다가, 아이는 이불을 들추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하, 통하는구나. 이 방향에서 노래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였다. 놀라운 것은, 아이가 나를 쳐다본 것이었다.
'너구나, 노래하는 게. 역시. 그 목소리라고 생각했어'
라고 말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어두운 밤에 시각을 내려놓고, 익숙한 이부자리에서 후각을 쉬게 하고,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이 시간에 입과 성대를 쉬게 해 주고, 어쩔 수 없이 귀만 더 밝아지는 이 시점에, 익숙한 나의 목소리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날 밤, 나는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며 아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어느 정도 노래를 부른 뒤, 조용히 얼굴을 만져주고는
"자야지..."
라고 말해주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노래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아이는 다시 몸을 돌려 눕고는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밤도, 그다음 날 밤도 나는 조금씩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그 시간을 기다리는 듯했고, 잠자리에 드는 과정이 조금씩 순조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매일 밤이 순조로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나는 아이가 얼마나 내 노래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 노래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나는 노래를 멈추었다. 아이는 조금 기다리다가 칭얼댔다. 나는 다시 노래의 첫 소절을 불렀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무언의 질문이었다.
"어파. "
안다, 알아. 가사를 알고 있어.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히쭉히쭉 잘한다. "
나는 그다음 소절을 신나게 이어서 불러주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어파.
아빠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어파.
하지만 많은 의미가 있는 단어였다. 내가 노래를 멈추었을 때 그 노래 가사를 기억해서 떠올리고, 그것을 말로 해주었다. 내가 멈춘 곳의 공백을 자기가 메꾸며 자기도 모르게 우리는 차례대로 노래를 한 것이었다. 발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단어를 떠올리고, 발음해서 말하고, 타이밍 마저 적절했다는 것에 나는 크게 고무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끼리 노래하며 노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나는 이 놀이를 낮 시간으로 가져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서 발음을 해볼 만한 것 위주로 아이가 참여할 기회를 주기 시작했고, 점차 어휘 테스트처럼 이 노래 저 노래 오가며 재미있게 그 시간을 보냈다. 낮시간에 새로운 노래를 불러주거나 알려주고, 저녁에 다시 같이 해보곤 하였다. 아이는 나만큼 재미있어하지는 않았지만, 노래가 끊기면 그 자리를 메꾸어서 계속 이어지게 하려고 열심히 노래를 해주었다. 그 덕에 발음이 잘 되는 단어와 안 되는 단어, 알고 있는 단어와 아닌 단어, 좋아하는 노래와 덜 좋아하는 노래 등등에 대한 정보도 쌓여갔다. 낮에 아이를 달랠 때에도 유용했고, 남들 보기에도 우리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마트에서 줄 서 있을 때, 놀이터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등등 내가 입만 열면 가능한 놀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워드 프로세서의 맞춤법 검사처럼 빈자리를 채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이는 네/아니 오를 표현할 줄 몰랐다. 얼굴을 보면, 뭔가 답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 같았는데 단지 그뿐이었다.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점차 강하게 받았다. 싫으면 밀치거나 도망치고, 좋으면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가져가거나 먹는 등 뭔가 행동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했다.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 같은데, 도리도리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긍정과 부정을 개념화하지 못하는 듯, 상황에 따른 반응은 일관된 개념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듯했다.
이제, 다음 과제는 분명했다. 네와 아니오를 얻어내야 했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할 즈음, 우리는 집으로 오시는 언어 선생님을 모시고 언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다정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아이의 입장에서 필요하고 관심을 갖는 수업이 되도록 무척 노력해 주시는 좋은 분이었다. 나는 아이의 발음 문제에 대해서 야간 공연 결과를 바탕으로 선생님께 피드백을 드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긍정과 부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싫으면 밀치거나 얼굴을 찡그리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며 아직 좋다/싫다라던가 긍정/부정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머릿속에 잘 정립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다. 도리도리와 끄덕을 할 줄 모르는데, 그것은 언어보다 먼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아직은 말로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은 단어와 사물을 연결 짓고 있는 단계여서, 그보다 추상적인 건 한참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이는 정말 너무 싫을 때 "아야!!!"라고 외치는 경우가 있었다. 나와 노래 부르기를 하기 전부터 아주 드물게 나오는 말이었다. 사실상, 첫 자발어라고 우리끼리 인정하는 단어였다. 그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것은 "아니야"라는 것이 남편과 나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아닌가? 의심은 의심을 낳고, 고민은 고민을 낳고, 고민 끝에 나는 도서관에서 인지치료 관련 책을 다 뒤져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