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인지 키우기(1)

색종이로 같음과 다름을 인지하기

by 흐린 뒤에는 맑음

나는 여기저기의 수많은 책들을 읽어보고, 여기저기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여기저기의 치료실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전수받은 팁들을 종합하여 아이에게 인지 학습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방식이 아니라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을 변형하고 다듬어서 나의 아이에게, 나의 상황에 맞게 마련한 방법이다. 내가 글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경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의미이다.


같고 다름을 인지하는 것은 인지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전산 시스템의 0과 1을 세팅하는 것과 동일하다. 모든 인지와 사고력의 시작으로서 이 개념이 정립되어야 무엇인가를 인지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것이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눈앞의 모빌을 보면서, 나의 주먹을 먹어가면서 이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같음과 다름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사고하면서 뇌를 발달시킨다. 하지만 감각이 왜곡되어 있는 아이는 이것을 스스로 발전시키기가 어렵고, 발전을 시켰다고 하더라도 퍼즐의 조각들처럼 연결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떠돌고 있어서 큰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 앎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알고 있는데도 표현하지 못하다니, 너무 안타깝지 아니한가. 능력을 과소평가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너무 슬프고 속상할 일이다.


집에서 아이의 인지와 표현력을 키워보자. 이런 활동의 대전제는 아이가 등이 따듯하고 배부르고 기분 좋은 컨디션인 상태, 하루의 찰나 같은 순간을 잘 잡아서 그 시간에 짧고 굵게 하는 것이다. 조용하고 적당히 밝으며 온도는 살짝 시원한 환경이 좋다. 특히 활동을 바라보는 방향의 빛을 잘 조절해서 아이의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우선 바닥에 빨간 색종이와 파란 색종이를 좌/우에 깔아 둔다. 오른손에 우세하면 빨간색을 오른쪽에 깔고, 왼손이 우세하면 왼쪽에 깔아 둔다. 이것은 시선이나 근육의 교차처리가 주는 어려움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모델링하는 사람이 빨간 색종이를 손에 들고 있다가 바닥에 있는 빨간 색종이 위에 겹쳐놓는 모습을 보여준다. 빨간색을 들고 시작할 때 "빨간색"이라고 한번 짧고 명료하게 말하고, 매칭할 때 "빨간색"이라고 한번 더 말을 한다. 짧고 명료한 발음으로 파 정도의 높이에서 동일한 음의 높이와 크기로 말을 해준다. 음성 안내 AI처럼 똑같은 발음과 높이, 크기로 말해야 한다. 단어의 뒤로 갈수록 음절의 음이 낮아지면 아이의 귀에 잘 안 들릴 수 있다.


손에 빨간 색종이를 쥐어주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 매칭을 능숙하게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되고, 매칭하지 못하면 손을 끌어서 빨간색종이 위에 내려놓게 한다.


아이가 손으로 물건을 집고 내려놓는 활동을 하기 어려워한다면, 빨간 색종이 방향으로 손에 쥔 빨간 색종이를 던지거나 떨궈도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같음을 인지하고 있고 이것을 바깥세상에 표현하는 활동을 하면 인정해 주는 것이다. 정교함은 차차 연습을 하면 되고, 이런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점점 좋아지기도 한다. 부족한 소근육은 다른 기회에 연습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인지적 활동에만 집중하자. 이렇게 자기 손으로 직접 색종이를 매칭하는 것을 도와주고 나면 이 수업은 끝이다. 다음 수업 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능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한다.


만일 아이가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면 팔꿈치를 살짝 밀거나 짧게 응원하는 방법으로 살짝씩 촉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앞서서 정답으로 자꾸 나아가지 않는다. 차라리 옆에서 활동도우미가 모델링을 하고 아이가 한번 더 프로세스를 볼 수 있도록 시범을 보이는 것이 낫다. 기다려주지 않고 끌고 나가면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그 환경만을 기억하여 아웃풋을 내는 데에 그칠 뿐이다.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매사에 표현의 능동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일수록 빨간 색종이와 파란 색종이의 간격을 넓게 하되, 아이의 시야가 의외로 좁을 수 있으므로 이 두 가지 색의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섬세한 부분은 늘 같이 생활하는 양육자가 제일 잘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치료실에서는 구현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발달이 늦는 경우에는 좌우 시야가 상하 시야보다 넓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좌에 하나, 우에 하나 두고 시작하는 것이 많은 경우 쉬운 과제에 해당한다. 물론, 만약 아이의 시야가 상하로 더 넓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시작해도 된다. 이러한 아이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양육자가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첫 번째 상황인 것이다. 아이가 이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다음 수업으로 해야 한다. 혹시 색맹은 아닌지, 색종이들 간의 거리가 너무 멀거나 가까왔는지, 아이의 시야에서 너무 먼 곳 혹은 가까운 곳에 색종이들을 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준비물에 대해 조금 덧붙이자면, 색종이는 같은 브랜드의 색종이를 사용하여 명도나 채도가 늘 똑같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양면 색종이는 아이의 시각적 판단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으니 피한다. 아이가 종이를 구기는 습성이 있다면 색이 보이지 않는 뒷면에 손코팅지로 단면 코팅하여 내구성을 강화하해도 되는데 이럴 경우 손으로 집기가 어려우므로 박스를 뒤에 추가로 덧붙여서 쉽게 집을 수 있게 한다. 박스 두께를 잡는 것도 어려워한다면 스티로폼 박스를 잘라서 사용하되 평평한 모양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색종이의 앞면에 즉 색 위에 코팅지를 입히면 빛이 반사되어서 아이가 색을 잘 보지 못하니 절대 금기이다. 코팅지는 내구성을 위한 것이므로 언제나 학습해야 하는 면이 아닌 뒷면이나 옆면에 붙인다.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원칙. 우리 아이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무중력 상태에서 저글링을 성공시키는 정도의 난이도라는 것을 잊지 않기. 우리와 같은 눈과 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고 환경 조성에 생각보다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잘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초기에는 많이 중요하다. 집중력이 길러지면서 차차 나아질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아이가 빨간 색종이 매칭을 성공하면 수업은 바로 끝내도록 한다. 성공은 기분 좋은 느낌을 알 수 있도록 밝고 짧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칭찬해 준다. 이 순간의 학습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짧으면 2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성공이 기쁘고 의아해서 나는 다시 확인해보고 싶지만, 멈춰야 한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중에 다시 하자고 밝은 얼굴로 알려준다. 그리고 두어 시간 뒤에 한 번 더 해보자. 아이가 정말 눈감고도 이것은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한번 매칭하는 것을 하루에 서너 번 한다. 아마도 하루 4회의 활동을 다 합쳐도 짧게는 10분 이내에도 끝날 것이다. 너무 잘한다 싶으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좋다.


착석이 되지 않아서 이런 식의 활동이 어려운 아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착석을 유도하기 위해 쟁반에 굵은 유성 사인펜 하나와 스케치북을 가져가서 펜을 잡으면 죽을 것 같다는 비명을 지르는 아이로 하여금 줄을 한번 긋고 끝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즉시 후퇴. 아이가 의아하게 생각하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쟁반에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가서 또 아무렇게나 선을 한번 긋도록 한다. 이것이 여러 날 반복되면 아이는 쟁반이 다가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렸다가 얼른 긋고 나서 이제 가라는 표정으로 쟁반을 밀어내거나 그 자리를 떠난다. 나중에는 쟁반에 펜과 스케치북을 준비하고 다가가지 않으면, 자기가 근처를 배회하며 신경 쓰다가 가까이 와서 선을 긋고 간다. 자폐적 성향이 있는 아이의 루틴에 대한 불안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여러모로 꽤나 유용하다. 내가 자리를 마련하고 거기에 앉아서 기다리면 자기가 와서 앉은 다음 선을 그어주고 떠나는 날이 온다. 그러면 착석할 준비가 된 것이다. 다 같이 앉아서 앞에서 설명한 색종이 활동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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