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Mothering - 1

by 서혜진 Jean Seo

엄마의 mothering (또는 자녀교육)이 잘 되려면 - 그 목적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양육하기 위함이든, 스스로 독립할 정도로 성숙하는 것이든- 소위, 엄마랑 아이가 '사이'가 좋아야 한다.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필요할 때 지침을 제공하는 훈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부모가 아이와 대화가 어렵다면 그 보다 힘든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의 증거는 ‘친밀함’ 이기 때문이며, 그 척도는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성’의 정도를 의미하기 대문이다.






자녀교육의 필수적인 토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특별히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난감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엄마가 보이는 감정적인 반응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자녀가 엄마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표현에도 순응해 주는 듯 보이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로부터 “우리 애(주로, 중 2)는 엄마 성미를 건드릴 수 있는 건 다 찾아서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사춘기라서 요즘 대면대면하고 말을 안 해요”, “공부요? 공부얘기는 얘랑 못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몰라요”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어쩌면 공부얘기가 하기 싫어서 엄마와의 대화를 그만두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진짜로,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되는 학교시험의 위력은 대단하다)






한편, 어떤 면에서는 자녀와 공부에 관한 대화를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라고 여겨진다. 중학생 자녀의 엄마에게 학원은 자녀에게 할 말을 대신 전달해 주는 ‘통역관’의 역할수행 때문에 그렇게 번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부를 잘하라고 보내는 것이 사교육일 텐데, 성적이 잘 나오든 안 나오든 계속 학원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mothering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에 대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제가 말하면 안 듣거든요.. 선생님이 OO한테 집에 좀 일찍 들어오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라는 얘기까지 통역(?)을 부탁한다. 마치 엄마와 자녀, 때로는 아빠까지, 가족 모두가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 출신들처럼…. “얘가 밤새 핸드폰을 하는 것 같은데, 문을 잠그고 있어서 얘기해도 소용없고, 아빠한테 말하라고 했더니 얘한테 너무 심하게 소리쳐서 듣는 내가 또 덩달아 짜증이 나더라고요. 나한테 들으라고 하는 얘긴가? 하는 부분도 생기고..”.





엄마는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자기 앞길을 잘 찾아나가기를 원한다고 얘기한다. 또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는 교육에서의 최선을 선택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과 자녀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가장 중요한 본인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기가 쉽다. 교육이 mothering의 주된 목적이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환경에서는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일이다. 오랜 사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볼 때, 아이와 엄마의 사이가 좋은 경우(그 기준은 좀 애매하지만) 아이가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다. 반면,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이미 공부에 질려버린 일부의 아이들은 중학교도 올라가기도 전에 엄마의 감정의 민낯을 경험해 버린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이든 아니면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든,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자녀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표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보다 훨씬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는 가장 큰 실수이다. 자녀와의 ‘친밀감’을 유지하고 싶은 엄마는 분노 또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신중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엄마의 감정이 ‘mothering practice’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야누스'가 균형과 이중성의 개념을 구현하는 의미의 은유로 사용되었다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야누스’의 특성을 가진다. 엄마는 사랑과 규율, 독립성과 지도, 자유와 안전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로마의 최고신으로 모시는 '야누스'는 '경계선을 지키는 신'이자 '문을 여는 신', 곧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재하는 신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1월’(January)과 ‘문지기·수위’(janitor)는 '야누스'(Janus)에서 왔다.) 각기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얼굴 때문에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는 데서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야누스’라는 말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한다. 이 두 얼굴이 공간적으로는 문의 앞과 뒤를,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처럼, 이중적 성격을 지닌 '야누스'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이는 육아의 복잡성을 '수호신'처럼 잘 헤쳐나가는 엄마의 역할에 긍정적인 은유로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야누스'의 부정정의미는 어떤가? (계속)



사진: Unsplash의 Susan Wil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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