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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혼란 -모성애 2

by 서혜진 Jean Seo

어찌 보면 엄마의 교육과 관련한 mothering의 영역을 ‘아웃소싱’하는 것이 ‘사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치, 모든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집밥’이 아닌, ‘외식’과도 비유할 수 있겠다. 소위, 배달 음식이나, 가정식에 버금가는 ‘퀄리티’를 가졌다고 또는 그 이상이라고 앞다투어 ‘선전’하는 ‘밀키트’와 다름이 없는 것이 한국의 ‘사교육’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의 교육과 입시경험에서 힘들었던 엄마 자신들의 청소년시기를 기억하는 엄마들의 자구책일 때도 있다. 어떤 워킹맘에게는 양육에서의 나의 부재한 시간을 대신해 줄 고마운 ‘친정 엄마’의 역할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에게 ‘사교육’은 ‘일신우일신(?)”하는 한국의 입시교육현실에서 시장의 상품화된 “사교육”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자구책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사교육’인 경우도 많다.





우리 보통의 엄마들이 모두 ‘사교육을 동원한 욕망의 화신들’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교육’ 종사자들이 ‘돈'밖에 모르는 ‘악의 화신들’인것 또한 아니다. 물론, 자녀를 잘 mothering 하겠다는 ‘신성한’ 동기가 ‘엄마의 욕망’으로까지 가는 지역적 특색(OOO맘, OO맘 등등)의 mothering의 예도 여전히 많이 볼 수 있기는 하다. 반면, 나의 개인적인 30여 년간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우리나라 보통의 엄마들이 모두 다 이렇게 사교육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또한, 일부 사교육 선생님의 열정과 교육에 대한 헌신은 여느 직업군에 비기지 못할 정도로 ‘프로’인 경우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 정반대의 경우도 적잖이 많기는 하다)






한편, 중학교 시절 일찍 자녀와의 전면전을 치른 엄마들이 너무 일찍 자녀의 ‘학습’에서 mothering을 놓는 엄마들이 왕왕(往往)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지친 엄마들이 이제는 아예, 자녀의 mothering을 학원에 위탁해 버리고 학원비 결재로 모든 mothering을 마무리한다는 점은 좀 걱정스럽다. 가장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고등학생 때, 정작 엄마의 mothering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엄마와 자녀의 이 어긋난 사랑의 시작은 물론 중학교부터이지만, 이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애써 외면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오랜 ‘연인’ 사이 같다. (영어교육에서만 봐도, 그 많던 ‘엄마표’ 엄마들이 다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일부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자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욕망을 자녀를 통해 얻고자 하는 문제적 엄마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극심한 결과의 끝은 생각보다 아이가 중학교시기를 지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난다. 대부분의 경우, 극심한 “사춘기”를 오롯이 엄마 혼자 다 받아내고 엄마의 항복과 자녀의 ‘하숙생’화로 귀결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요즘 엄마들은 잘 타협해 가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다. 나름 잘 타협했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이제 자녀교육에 쏟아붓던 열정이 길을 잃는다. 소위, 할 일이 없어진다. 싸울 대상이라도 있었던 갈등시기(사춘기 시기, 주로 중학생시기)를 지나고 나면 ‘다 필요 없다’라는 등등, 자신과 그동안의 자기만의 육아/교육 철학으로부터의 ‘출구 찾기’로 힘들어하는 엄마들도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엄마는 ‘우울증’, ‘갱년기’, ‘빈 둥지 증후군’ 등등 병리학적 진단의 영역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계속)



사진: Unsplash의 ameenfah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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