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행복’은 자녀의 대학입학 결과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이 대변하는 것처럼 자녀의 학업성적에 대한 만족함이나 자유함에 따라서 엄마도 스스로의 삶이 평가되는 곳이 한국이다. 자녀의 성적을 기준으로 엄마로서의 자격과 능력에 대한 평가를 겸하는 사회적 시선이 만연하다. 자녀교육/양육을 평가하는 이러한 기준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워킹맘'들은 스스로가 아이의 교육에서 미안함과 죄의식, 더 나아가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는 문화가 따라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녀에게 이미 충분한 교육적, 감정적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보이는 중산층의 전업주부인 엄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은 동일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만난 전업주부 엄마들에게서 자신들의 자녀양육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대해 들을 때면, '나는 충분히 자녀교육을 잘하고 있지는 못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생각보다 많았다. 인상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부러움을 받을만한 엄마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스스로의 '마더링'에 대해 박한 점수를 주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나갔다는 점이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모두가 정답을 모르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이 정도면 엄마로서 잘하고 있어, 충분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얼마만큼이면 충분한가에 대한 ‘정도’와 ‘기준’을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자녀의 교육과 관련해서는 ‘무언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한국의 엄마들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모두들 누군가는 이미 자신의 자녀보다 더 먼저 시작했고, 더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사교육 환경에서, 더 좋은 정보를 가지고, 내 아이보다 더 앞서나가고 있는 것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엄마가 스스로에 대해 '뭔가 결여되어 있다’라고 여긴다면, 자신이 양육하는 자녀에 관련한 일, 특별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여겨지는 고등학교 학생의 학업과 입시와 관련한 문제를 대할 때에도 고스란히 그러한 생각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신기루처럼 대안으로 있는 '상품화'된 교육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디 엄마만 그런가? 시험이 일상인 아이들도 여전히 '더 해야만 한다'는 '부족 증후군'속에 또다시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하며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는 것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일상이다.
자녀의 발달연령별도 물론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아기’ 일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엄마아빠의 모든 사랑을 위한 노력이 마치 자녀가 사춘기 이전에 다 소진되어 버린 듯하다는 점이다. 엄마가 자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는 생애주기로 본다면 몇 번이나 더 있겠다. 하지만, 학벌을 중시하고, 마치 한 인간의 모든 역량을 대학입시 결과로 마감해 버리는 듯한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미루어볼 때, 자녀가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중요한 시기는 단연코 고등학교 시절이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대학입시에 무관심하기는 쉽지 않은 대한민국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대학을 아이들은 찾는다. ‘성인이 되면 뭐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 다시 시작하면, 너무 늦었죠?’라는 좌절을 넘어서, 무기력이라는 또 다른 산등성이를 느릿느릿 올라가는 아이도 있었다. 한편, 전교 1~2등을 계속하던 아이가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 갑자기 다시 공부를 할 자신이 없다며 학교도 안 가고 계속 잠만 잔다는 아이도 있었다. 엄마가 보기에는 한심해 보일런지도 모르는 이런 아이들이 개인적인 고민을 얘기하는 것을 들어 볼 때면, 안쓰럽고 할 말이 없다. ‘공부를 해도 해도 어차피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은데, 그만둘 수도 없어요. 그래서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란다. 그래서 스스로를 ‘좀비’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엄마들은 그래서 또 사교육에 mothering을 위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악순환은 반복되고, 그 사이에 어느덧 자녀와 엄마는 더 이상 ‘한 팀’이 아닌, 나를 괴롭히는 ‘적수’가 되어 버린다.
사교육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의지와 과한 투자를 혹자는 엄마들의 탐욕스러운 욕심이 유일한 이유인 듯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언가 좀 더 해야 해’라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심리적인 빈곤'과 '불안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육 환경 특유의 노골적이거나 미묘한 비교와 순위에 끊임없이 시달리거나, 자녀의 학업 성적에 대해 걱정한다면, 끊임없이 아이를 평가하고 비교하는 것은 엄마와 자녀 모두의 몸과 마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관계의 악화, 더 나아가 건강의 염려 속에서도 계속 공부를 다그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일관된 것이 있었다. 아이 각자의 다양한 재능의 발휘나, 공동체에 대한 기여로 학생의 우수성을 인정받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듯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업성취도라는 천편일률적 표준에 얽매여 자리매김되듯이, 엄마도 같은 잣대로 자녀를 양육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의 우수성의 기준을 학업적 성취에 의한 평가로만 가늠하여 학생의 가치를 가늠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한국에서, 비슷한 잣대로 엄마들도 역시 자녀양육에 대해서 평가받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녀를 좋은 성적의 아이로 양육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는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자녀양육결과의 평가척도라고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엄마들 모임에 가면, 엄마가 아무리 잘났건 못났건 상관없이 공부 잘하는 애 엄마가 제일 말이 많고, 모두가 그 엄마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게 사실이다. 부러움과 노하우 전수? 뭐 그런 이유겠지만, 다 필요 없이 그냥 ‘평정’이다. 가볍게 몇 시간 자는가?부터 시작해서 어디 학원을 다니느냐, 그 학원의 어느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등등 사교육정보교환이 중, 고등학교 엄마들의 모임의 주된 역할이 된 지 오래다.
인터뷰에서 만난 이 시대의 '한국'엄마들은 중, 고등학교 학생과 관련하여서는 좋은 성적을 내는 자녀와 대학입학시험에서 성공적 결과를 만들도록 양육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했다.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엄마들과 달리 아이를 키우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만큼 용기 있는 엄마들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일반적 사회, 문화적 시선에서 여느 한국의 엄마가 교육문제에서 자유롭고 자기 주도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mothering'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라면 한국의 실정에 맞는 '엄마노릇'을 잘해보고 싶다. '미리' 해야 할 것들을 잘 정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잘해나가고 싶다. 한국만의 특별한 주제인 '교육'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면서 '생각해야 할 것들', 또 '해야 할 것들'과 관련한 주제로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