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마는 국내의 최상위 대학을 졸업 후, 석사와 박사까지 모두 완료한 ‘엘리트’였다. 자녀를 출산하기까지는 아빠와 엄마가 모두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다고 했다. 출산 후, 어쩔 수 없는 양육의무로 점점 일을 줄여가던 엄마는 결국 이제는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아빠는 여전히 대학교수이고 자녀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 이 엄마도 대학 출강 기회가 늘어나기를 희망했었다. 중학교 때까지 곧잘 공부하던 딸아이에게 ‘S’ 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목표로 공부하자는 다짐을 받아냈다고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에 된 이후 본 첫 시험에서 이미 내신으로는 S대를 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바로 컨설팅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미술로 진로를 바꿨단다. (사실, 원래부터 아이는 미술을 좋아했다는 말도 했다) 전공을 미술 쪽으로 바꾼 이후, 모든 사교육과 아이와 엄마의 스케줄도 바뀌었다고 했다. 이 엄마는 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애가 집에 오기도 전부터 바로 아이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점수를 확인한다고했다. (바로 확인해야 애가 기억을 잘한다는 이유란다). 그 결과에 따라서, 일정의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사교육을 가차 없이 바로 갈아치웠단다. 이러한 속도있는(?) 관리를 그녀는 바람직한 마더링이라고 믿는 듯, 빠르게 이 모든 이야기를 읊었다.
엄마의 너무 빠른 행보에 듣고 있는 동안 조금 놀랬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개인 과외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공부방으로 한번 시험 볼 때마다 과목별로 학원이나 과외가 바뀔 정도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예 전공을 ‘미술’로 틀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단번에. 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가 어떻든 이 엄마는 분석하기에 바쁘다. 이번 반 평균 어떨 것 같으냐?, 다른 애들은 어땠느냐?, 아무리 시험이 어렵다고 해도 너는 이 문제는 틀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 등등. 시험 보고 있는 중에, 내일도 바로 시험을 봐야 하는 아이에게 오늘 본시험에 대한 분석과 리뷰로 날카롭다. (소위, 요즘 MBTI로 볼 때, 이 엄마는 ‘극강 T’ 성향처럼 보였다) '그러면 아이가 울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본인도 시험을 그렇게 봤는데 뭐 할 말이 있겠어요?'란다. 아이도 그러려니 한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여지없이 엄마는 시험 기간 중에도 신랄한 비평을 쏟아냈다. ‘왜 그렇게 까지 하느냐?’라는 질문에 '안 그러면, 얘가 긴장이 풀릴 것 같다'란다. 이러한 분석과 비평은 사교육 선생님들에게도 적용된다. ‘애 시험지는 보셨느냐?’, ‘이런 유형의 문제를 애랑 미리 다루었느냐?’, ‘이 정도이면 애가 몇 등급을 받을 것 같으냐?' 등등... 이러한 질문에 적절하게 답을 못하면 바로 그 학원을 정리(?) 한다고 했다. 엄마인 '본인이 할 수 없어서 사교육을 보낸 것 아니냐? 당연히 사교육에서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꼼꼼하게 리뷰를 해놓지 않으면 엄마인 자기가 '너무 불안하다'라고도 했다. ‘뭐라도 해 놔야 맘이 편해서’ 이렇게 사교육 선생님들에게서 리뷰와 분석까지 받아둔단다. 그리고 이런 분석과 리뷰는 그동안 이 엄마의 중요한 '마더링'의 하나였다.
임포스터(Imposter - 사기꾼)는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을 경험하는 사람을 말한다. 본인의 실력과 유능함으로 얻게 된 자신의 성취나 자격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회의와 불안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부족한 자신의 본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가면 증후군'은 직장, 교육 또는 대인 관계를 포함한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부적절함'에 대한 자기 기준과 '불안감'은 엄마로서의 역할(마더링)을 포함하여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과 ‘인텐시브 마더링’ (Intensive Mothering)라는 개념은 본래 한국적인 용어는 아니다. ('인텐시브 마더링’은 엄마가 자신의 웰빙을 희생하면서 자녀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최상의 보살핌을 제공하는 개념이라고 이미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았다) 하지만, 다른 많은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엄마도 ‘가면 증후군’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교육열과 학벌 문화의 맥락에서 그 잠재적 관계는 더 클 수 있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에게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이 엄마의 경우처럼 고학력이고 교육을 위한 가정 내의 자원이 ‘메가 (Mega) 풍요’ 한 경우에 더 많이 관찰될 수 있다.
결혼 전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전문인’이었던 엄마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이후, 그들은 자신이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때문에 느끼는 부적절함을 자녀교육의 결과로서 보상하려고 한다.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는 엄마는 사회가 기대하는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마더링을 탁월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인텐시브 마더링’을 강화하기 쉽다. 이러한 노력을 포함하는 ‘마더링’의 과정은 자녀의 교육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자녀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여기기가 쉽다. 만일, 자녀의 성적이 스스로의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을 경우, 이 또한 자녀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엄마가 스스로 규정한 '완벽한 마더링'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의 부적절함을 지속적으로 '과잉 보상'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자녀의 학습과정을 촉진하거나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과도한 칭찬과 대가를 지불하기가 쉽다. 결국, 한국의 교육경쟁 속에서 임포스터엄마는 자녀의 교육적 성과에 집착하는 마더링스트레스로 ‘번아웃’이 되기도한다. 이처럼, 엄마가 느끼는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이 엄마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그것을 보충하고 대신해 줄 대안으로써 ‘사교육’을 통한 ‘인텐시브 마더링’을 하는 관행을 더욱 추구하게 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엄마는 자신이 "좋은" 엄마 -이 기준 또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는 이 엄마의 경우처럼 '자녀의 교육적 성과를 잘 이루어낸 엄마'라는 개념으로 생각해 보자- 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엄마처럼, 자녀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사교육에 등록하고, 학업 성취도를 즉각즉각 모니터링하는등 면밀한 마더링에 항상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스스로가 정한 높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과도한 ‘인텐시브 마더링’으로 본인과 자녀의 웰빙을 희생한다. 임포스터 엄마들은끊임없이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비현실적인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녀와 엄마 본인에게 '그다음', '그러고 나서', '더 나은'등과 같은 것들에 집착한다. 결국, ‘가면 증후군’은 ‘사교육을 통한 인텐시브 마더링’을 심화시킨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한국 문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다. ‘가면 증후군’ 과 ‘인텐시브 마더링’ 사이의 관계는 좀더 복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엄마가 육아와 교육 측면에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것은 분명해보인다. 자녀의 성적과 엄마의 성적이 나뉘어지지가 않는다. 자녀의 교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자녀의 성적과 ‘대학입시’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엄마가 본인의 ‘마더링’을 부적절하기 때문이라는 ‘가면 증후군’ 은 더욱 심해진다. 결국, 자녀의 입시가 좋지 못한 경우로 결론이라도 나게 되면, 소위, 능력있었던 전업주부 엄마는 더 깊게 마음의 길을 잃기 쉽다.
자녀의 입시와 학업 성취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자녀의 성적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지는 엄마는 자녀가 학교 및 과외 활동(주로는, 사교육)에서 탁월하도록 ‘인텐시브 마더링'(집중적인 엄마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면증후군'때문에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엄마가 스스로에 대해 부적절 함을 느끼는 만큼 양육의 결과에 대해서 불안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세운 기준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높으면, 또 그 높이 세운 기준만큼 자녀를 몰아세우기도 쉽다. 그래서 ‘사교육’을 통한 ‘인텐시브마더링’의 양육 관행을 더욱 추구하게 하는 악순환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가 내면의 이러한 ‘가면 증후군’ 과 ‘인텐시브 마더링’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성을 인식하고 ‘자녀를 돌보는 것’과 ‘자신을 돌보는 것’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