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험들 중 하나인 '9월 전국모의고사'가 있는 날이다. 내 딸아이도 시험을 봤다. 학교로 아이를 픽업하러 가면서 마음이 벌써부터 '아련하게 저리기' 시작한다. '얘가 시험을 어떻게 봤으려나?'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오늘 시험의 난이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인터넷을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본다. 혹시라도 딸아이가 하굣길에 차에 올라타서 울기라도 할까 봐, 미리 위로할 말을 찾아놔야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짜놓는 방법이다. '괜찮아, 다들 어려웠다고 하네, 너만 어려웠던 게 아니니까, 다음에 더 잘 보면 돼' 등등... 뭐 할 말이야 매번 뻔하지만 그래도 할 말과 그에 걸맞게 동원할 '근거'를 준비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입시', '시험', '교육' 등과 관련된 주제에서 자유로운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만약에 아이가 성적이 좀 괜찮은 편이라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고등학생을 마더링하는 역할은 자녀의 육체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소위, '멘탈관리'라는 정서적 안녕을 돌볼 책임까지 전문적이기를 요구한다. 결국, 교육, 특히 입시에 너무 진심인 사회분위기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더링은 상당한 양의 감정 노동을 수반한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높은 수준의 감성 지능과 대인 관계 기술이 필요한 어떠한 직업에서든 특히 중요한 것이다. '감정노동'은 사회학자 Arlie Hochschild가 1983년에 쓴 저서 "The Managed Heart"에서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업무나 역할이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관리, 표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한편, '감정노동'은 고객 서비스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서비스'직에 해당하는 사교육 강사는 물론 포함한다. 컨설턴트, 의료전문직 등, 전문적인 영역으로 보이는 직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엄마들의 마더링은 '감정노동'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자녀 양육에 수반되는 중요한 정서적, 심리적 실행(practice)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마더링은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복합 고난도, 전문 감정노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듯 살펴보아도 여러 가지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정서적 지원(누가 뭐라 해도, 엄마는 자녀에 대한 정서적 지원의 주요 원천이다)을 위한 '감정 조절'이다. (아주 많은 경우에 엄마란 직업은 마더링의 전 영역에서 인내심을 갖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기에 만만치 않다) 청소년기 자녀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는 '공감과 이해' 또한 마더링의 중요한 측면이다. 치열하고 노골적인 경쟁중심적인 입시제도하에서 분투(?)하고 있는 자녀의 감정을 인식하고, 확인하고, 반응하는 것이 포함되며, 이는 높은 수준의 '감성 지능'을 요구한다. 특별히,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현재 학업 성취와 과정, 대학입시라는 미래와 관련한 걱정과 불안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의 옆에서 엄마들은 종종 자녀의 안녕과 행복을 우선시하기 위해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제쳐두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와 같이 자녀의 감정을 먼저 살피게 되는 이러한 이타심은 '자기희생'을 당연시하는 '감정 노동'의 한 형태이다.
감정노동은 크게 '표면 연기'와 '깊은 연기'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느껴지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는 '표면 연기'란, 좌절하거나 속상하다고 느끼더라도 미소를 짓고 응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면적인 연기와 달리 '깊은 연기'에는 내면의 감정과 외부로 표현되는 감정을 일치시키려는 진정한 노력이 포함된다.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는 대신, 역할에서 기대되는 감정을 진정으로 느끼려 노력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다. 우리 엄마들은 이 두 가지 '표면 연기'와 '깊은 연기'를 모두 잘도 해낸다. "타인의 고통"의 "자기화"는 고난도의 '감정노동'이다. 엄마들은 이런 고난도의 '연기'를 특별한 교육도 없이 잘도 해낸다. 이게 그냥 된다. 기업들은 조직에서는 '감정노동'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이에 참여하는 직원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하고 이에 대해 투자한다. 여기에는 감성 지능 교육, 지원적인 업무 환경 조성, 직원이 자신의 역할에 따른 정서적 요구 사항을 관리할 수 있는 리소스 제공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은 '감정노동자'가 자신의 업무나 역할의 일환으로 감정을 관리하고 표현하려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또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감정노동'의 대표자인 우리 엄마들을 위한 '가정'내에서의 환경과 지원은 어떻던가? 마더링과 관련된 대부분의 감정 노동은 가치를 창출하는 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무보수 감정 노동'이라는 인식이 때로는 엄마의 일상을 과소평가하기도 하며, 정서적 피로를 넘어서 '마더링 번아웃'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주변의 '지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엄마 스스로가 매 순간 처리해야 하는 감정노동집약적 '과업(task)'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엄마가 마더링과 관련한 일상을 잘 해결하려면, 엄마의 정서적 부담을 완화하고 웰빙을 증진하기 위한 개인 및 사회 솔루션의 조합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서부터 마더링이 집약적인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인식의 전환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적절한 가정 내의 분담과 지원을 고민함으로써 엄마와 다른 구성원들이 보다 공평하고 감정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마더링의 부담을 완화하고 엄마들의 정서적 웰빙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적 태도와 정책의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마더링이 ‘정서적 노동’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엄마는 학업 스트레스나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에서 다루기 힘든 감정을 겪고 있는 자녀를 마더링할 때 자신의 감정을 먼저 조절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와 한 팀(?)인 것을 보여주고 지지해주기 위해 엄마가 먼저 감정적으로 격앙하는 모습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엄마가 먼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해보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자원, 사회적 지원, 자기 관리 기회를 제공하면 마더링과 관련된 감정노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 소진(번아웃) 위험을 줄이고 건강한 가족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논하기엔 우리 엄마들의 닥친 하루하루의 일상이 너무 바쁘게 진행된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주관적 마음과 객관적 마음을 돌아보는 엄마 스스로의 '자기 성찰적 인식'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할 만한', 감정노동의 간극을 잘 다스리는 마더링을 해 낼 수 있을까? 자녀의 성적향상과 같은 단기적 결과와 성취가 필요할수록, '장기적 사고'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기다리는 마더링'이라 불러본다.
누구도 평안하지 않은 교육을 둘러싼 이러한 ‘전쟁’ 같은 ‘사랑’이 가족을 휩쓸고 가는 시기는 자녀들이 중학교 2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기 때부터, 입시의 절정인 고3까지 장장 5~6년에 걸쳐 진행된다. (아이가 둘이거나 셋 이상이면 10년이 되기도 한다.) 이 시기를 얼마나 잘 준비하는가? 의 여부는 엄마가 감정자산(emotional capital)을 얼마나 잘 쌓아놓는가?이다. 엄마의 삶과, 마더링을 통한 자녀의 학업적 성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인생사가 다 그렇듯이 만병통치약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있을 것이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기제’를 마련해 두는 것은 없을까? 나는 엄마의 스스로의 삶, 자녀들, 교육 등에 관한 “근원적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스스로의 성찰이 없는 마더링은 그 무엇보다 엄마의 소중한 시간과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원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위에 엄마는 방황하는 자녀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을 키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