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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진 Jean Seo Oct 21. 2023

‘최상위권-엄친아들’


교육과 관련한 ‘마더링’에서의 ‘기대’는 자녀의 전반적인 학습과 관련한 활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가질 수 있다. 엄마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기대’의 긍정적 효과로는 우선, 자녀가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자녀들이 그들의 엄마(또는 부모) 또는 선생님이 그들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아이들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에 힘입어 스스로가 도전적인 목표를 성취함으로 주변의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학업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학습동기부여방식’으로서 ‘기대감의 표현’은 학업성적 향상을 위한 ‘마더링’ 방법으로 바람직하다. 긍정적인 기대에서 출발한 동기와 과정의 결과로 자녀들이 학업 목표를 달성하거나 뛰어넘을 때, 그들은 성취감을 얻고, 그것은 다시 그들의 자신감을 향상한다. 이렇게 자녀들은 학습과 관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기대’의 부작용에서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의도하였건, 의도치 않았건 너무 많은 ‘기대’를 받는 아이들은 의외의 상황에서 ‘번아웃’이 되거나, ‘임포스터 증후군을 겪기 쉽다.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은 본인의 노력으로 얻은 실력과 성취에 대해서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결과로써 얻게 된 공동체 속에서의 자격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회의와 불안을 과도하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부족한 자신의 본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나머지 ‘평가 받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더 심한 경우, ‘완전히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부적절함'에 대한 과도한 ‘자기 평가절하’는 ‘마더링’을 포함하여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연히, 고등학교 3년 내내 평가에 노출되는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들'이 의외로 ‘임포스터’들인 경우가 많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한' 한 학생의 이야기에서 나는 ‘가면 증후군’의 위력을 경험했다. 이 학생은 너무나 성실하고, 평상시 말과 행동에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동중정(動中靜) 스타일이었다. 항상 열심히 공부하느라 바쁘고 열심히지만, 조용하고 호들갑 떠는 것을 별로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움직임 중의 고요함’(動中靜) 스타일이었다. 사교육 숙제를 안 해오는 적도 거의 없었고, 전교 1등을 했을 때에도 본인은 정작 그다지 요란하지도 않았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최상위권이었던 이 학생은 주변 엄마들 사이에서 ‘엄친딸’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고2 여름까지 줄곧 전교 1~2등을 했었다. ‘일반고’였기 때문에 내신에서 전교 1~2등을 하려면 전 과목에서 5개 이상을 틀린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든 과목의 지필고사와 수행평가에서 완벽을 유지해야 했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이런 하나하나의 단계를 그동안 1학년과 2학년 1학기까지 모두 잘도 해내던 아이였다. 내신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능 모의고사에서도 ‘국, 영, 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유지했었다. 그대로였다면, 당연히 소위, ‘SKY’, 또는 ‘의학계열’에 무난하게 합격했을 아이였다. 

 





발단은 ‘코로나’였다. 사실, 워낙 몸이 약했다. 날씬하고 키도 아담했던 이 아이는 평상시에도 시험기간이 아니면 그다지 밖에 많이 나다니는 아이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공부하다 피곤하면 잠을 많이 자는 방식으로 체력을 보충했단다. 당시 ‘코로나’에 걸리면 ‘격리’ 해야 하는 의무 일주일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그 참에 쉬어가자’라는 생각이었단다. 처음엔 엄마도 '아이가 몸이 많이 처지는 구나'라고만 생각했단다. 그래서 계속 자길래 푹 쉬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별 염려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1주, 2주가 지나도 계속 잠을 잤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하면서 당분간은 그래도 쉬게 해줘야 한다는 말만 했다고 했다. 이렇게 3주 차가 되어가니, 더 이상 학교에서도 ‘병결’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아이가 학교에 결석을 했단다.(당연히 모든 사교육에도 다닐 수가 없었단다.) 결국 무단결석이 늘어가기 시작했단다. 어쩌다 학교에 가도 출석만 체크하고 바로 집에 오거나, ‘보건실’에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조퇴하고 집에 오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한약도 먹여보고, 몸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좋다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단다. ‘괜찮다’고, ‘별로 많이 성적이 떨어진 것 아니고, 설령 떨어졌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대학가도 괜찮다’고 얘기했단다. 어떠한 말에도 별 반응이 없이 ‘졸리다’는 말만 하고, 다시 들어가서 계속 잠만 잔다며 엄마는 결국 울었다. 




 

나도 한 번은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라는 질문에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다시 또 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는 의미였다. ‘전교 1~2등을 유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만 힘든 것 아니니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이미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서 실망해서 그런 것이라면, 아직 충분히 시간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등등 아무리 얘기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너무 무섭다’고 말하며 아이가 울었다. 나도 같이 얼마나 울었나 모른다. 흐느끼는 작은 어깨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나도 같이 울면서 그냥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가끔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근황을 묻곤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같이 부여잡고 울기도 해 보고, 사정하며 달래 보기도 하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도 질러 봤단다. 아이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고 했다. 


 




혹자는 엄마가 잘못했던 것 아니냐는 속 모르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2학년까지 이 아이는 내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지켜보았던 아이였다. (이 아이의 언니부터 시작해서 이 가정의 ‘아비투스’와 '마더링'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그다지 극성스럽거나 요란하지 않았다. 아이가 워낙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요란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원할 때 사교육을 다니게 해 주었고, 성적에 대한 ‘푸시’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스타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과정을 보는 엄마는, “시험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시험점수에만 신경 쓰는 부모처럼 아이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떠안길 때가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해보기도 해요”란다. 하지만, 평상시의 이 엄마는 "시험은 어땠어?"라고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워하는 엄마였다. 겉으로 많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학생은 시험 한번, 한 번에 인생 전체가 달린 것처럼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처럼 워낙 뛰어나고 성실한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보면, 주변의 선생님들은 누구나 직접 만나서 무언가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수업료를 받고 한정된 만남 속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교육 선생님들이나, 평가의 주관자인 공교육 선생님들 조차, “조금만 더 힘내자”, 이거나, “다음에도 잘해보자”, 기껏해야, “그럴 필요가 없다”라는 등의 말로 격려나 위로해 주는 것뿐인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최상위권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감’에 대해서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곤 한다. 실제로 우리 아들도 고등학교 때 (전교 1~3등을 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신경을 썼다고 했다. 오죽하면, 해야 할 공부를 학교에서 다 할 정도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혼자 계속 공부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나는 “얘가 전교 1등 놀이를 하네”라며 놀리곤 했었지만, 아들은 짐짓 진지한 놀이(?)였던 것 같았다. 다행히, 아들은 ‘오늘도 1등 놀이하느라고 힘들었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지만, 매번 중간,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그동안의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풀어내듯이 시험을 잘 봤건 못 봤건, 한바탕 울곤 했다. 덩치 큰 아들이, ‘조금 더 할 수 있었는데’ 라며 눈물을 흘릴 때는 전교 최상위권아이들이 느끼는 그들만의 ‘고독한 전쟁’과 최상위의 ‘왕관’의 무게를 혼자 묵묵히 견뎌야하는 부담이 느껴졌다. 

 




실제로 많은 최상위권의 아이들은 이러한 심리적 부담에 ‘번아웃’되기가 쉽다. 사실, 첨예한 경쟁이 치열한 '최상위권'의 아이들이 시험공부의 과중한 양과 심리적 부담에는 더 취약하다. 이러한 심적 부담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쁜 일정을 소화해 가며, 뼈빠지게 공부해야 유지할 수 있는 성적 사다리 위의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너무 여린 아이들이다. 물론, 일부는 그러한 부담까지도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한 추진력으로 사용하며 성공을 추구하기도 한다. 시험을 잘 본 이후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보다 더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만나 본 소위, '엄친아 괴물'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1~3등이라는 극최상의 결과를 성취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부럽고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마더링이지만, 이런 아이들의 엄마들도 아이들과 함께 많이 운다. 이 아이들도 내면에서는 남모르는 좌절감과 오히려 더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임포스터'들로 가면 속에 꽁꽁 잘 숨기고 있을 뿐인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완벽한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는 성공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번아웃’된 일부의 아이들은 ‘자포자기’한다. 너무도 가슴 아프지만,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까지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이렇게 공부 잘하는 '엄친아'인 경우가 더 많다. 

 





지속적으로 최상위를 유지하는 아이들의 엄마를 보면 우리는 모두 부러움과 찬사가 앞선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여전히 첨예한 경쟁과 자신에게 부여되는 주변의 과도한 기대(학교에서도 선생님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전교 1~3등은 상당한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는 상응하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압박이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압도적이 된다면, 그것은 학생들의 정신적 그리고 정서적인 웰빙에 부정적이다 못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엘리트들이 가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 한 예이다. 누구나, 주변으로부터 너무 큰 기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부응하고 싶어 하고, 결과에 너무 집중하게 된다. 1등을 놓칠 것이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전전긍긍하는 '쫄보'를 만든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진취적 사고방식을 개발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방해할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외적 기대는 학생들의 내재적 학습동기를 오히려 감소시킬 수도 있다. 학습이 전적으로 외적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주도될 때, 학생이 스스로 학문적 탐구, 그 자체로부터 생길 수 있는 ‘공부의 즐거움’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최상위권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적인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로 비칠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선,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면, 더욱 칭찬에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대의 표현을 조심하자는 것이다. 한두 번 잘했을 때의 너무 과도한 칭찬은 다음에 혹시 이런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큰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주목과 '모두가 나의 성공에 관심이 있다'는 생각을 아이가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는,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포함한 전인적인 교육에 대한 강조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다음세대의 우리의 잠재력 있는 인재들이 학업적인 기대에 대한 지나친 강조 때문에 시험 점수와 표준화된 평가에 대한 협의의 ‘공부’에만 너무 몰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수한 '영재'들이 너무 일찍 평범한 아이들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국가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인 우리의 '엄친아'들이 너무 어려서부터 ‘가면 증후군’의 취약성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꽃도 못 펴본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저린다. 



Unsplash의 Matteo Minog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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