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준비하면서 만난 전업주부 엄마들로부터 자신들의 자녀양육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대해 들을 때면, '나는 충분히 자녀교육을 잘하고 있지는 못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생각보다 많다. 인상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부러움을 받을만한 엄마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스스로의 마더링에 대해 박한 점수를 주는 이유들을 나열했다는 점이다. ‘나의 자녀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더링을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우리 애가 시험 결과등 학습 때문에 힘들어할 때 그 애의 감정을 돌볼 수 있을 만큼 제가 충분히 강하거나 능력이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요, 그냥 애한테는 말을 못 하겠어요. 답답하기만 하죠...', ‘제가 아이와 함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만큼 입시를 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할 말이 없어요’, '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될 만큼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제가 학습정보에 대해서 충분치 않은 건 사실이니까요' 등등, 엄마들은 스스로 평가하는 엄마로서의 부족함에 민감하게 서둘러 반응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 정도면 엄마로서 잘하고 있어, 충분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얼마만큼이면 충분한가에 대한 ‘정도’와 ‘기준’을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자녀교육과 관련해서는 ‘무언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한국의 엄마들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의 이유에는 자녀의 학업과 관련한 부족함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고등학생한테 공부에 대해서나 시험준비에 대해서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가능한 지점이 있을까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미 우리 아이보다 더 먼저 시작했고, 더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사교육 환경에서, 더 좋은 정보를 가지고, 더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니까요” 란다.
사실, 엄마가 스스로에 대해, ‘나는 이미 부족하고, 이미 뒤처져 있고, 이미 지고 있고, 이미 뭔가 결여되어 있다’라고 여긴다면, 자신이 마더링하는 자녀와 관련한 일, 특별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여겨지는 고등학교 학생의 학업과 입시와 관련한 문제를 대할 때에도 고스란히 그러한 생각이 지배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 아이와 가족은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불평과 걱정이 크면 클수록, 다른 대안으로서의 '사교육'에 더 의뢰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틈에, 엄마들에게 대안으로 잘 준비되어 있는 듯 보이는 신기루 같은 '상품화된 교육'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가 시험을 마치면, 이번 시험에서 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이 사실이네요. 아이도 그런 압박감에 짓눌린 채 다시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시험을 또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사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과한 신뢰와 과한 투자는 ‘무언가 좀 더 해야 해’라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심리적인 ‘절대적 빈곤’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였다. 자녀들 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한국 교육 환경 특유의 노골적이거나 미묘한 비교와 순위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자녀의 학업 성적에 대해 걱정한다. 끊임없는 평가와 비교에서 비롯된 '공부공부 마더링'은 엄마와 자녀 모두의 몸과 마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 악화로 결론나기가 쉽다.
“그래도, 우리 애도 대학 가면 이해할 거예요. 제가 사교육을 통한 교육에 매달리고 집착한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내 애가 그러한 비교의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좌절보다는 낫죠. 미래의 실패에서 벗어나도록 지금 돕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입시로 한 인생의 평가와 전망이 끝나버리는 학벌사회에서 아이 각자의 다양한 재능의 발휘나, 공동체에 대한 기여로 학생의 우수성을 인정받기는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업성취도(성적)라는 천편일률적 표준에 얽매여 자리매김되듯이, 엄마도 같은 잣대로 자녀의 성적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에 맞는 '공부공부' 마더링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시험점수에 의한 평가로만 학생의 가치를 가늠하는 한국에서, 자녀의 대학입시결과로 엄마의 마더링(심하게는 엄마 자신의 삶으로)까지 확대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우리 엄마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솔직히, 엄마가 자녀를 좋은 성적의 아이로 '잘 만들어서, 얼마나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는가?'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자녀양육결과의 평가척도인 것이 사실이니까요".
“엄마들 모임에 가면, 엄마가 아무리 잘났건 못났건 상관없어요. 공부 잘하는 애 엄마가 제일 말이 많고, 모두가 그 엄마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해요. 부러움과 노하우 전수? 뭐 그런 이유겠죠. 다 필요 없이 그냥 ‘평정’이에요”
사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의 마더링은, 어떻게해서 더더욱 좋은 성적을 만들 수 있나?가 전부인 것이 사실이다. 대학입시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마더링이라고 평가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 나아가,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교육도 시키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공부 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만큼 용기 있는 엄마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라고 말한다.
자녀의 성적을 기준으로 엄마로서의 자격과 능력에 대한 평가를 겸하는 사회적 시선과 기준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대학입시와 관련해서는 엄마들 스스로가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는 듯, 사교육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것이 자녀에게 이미 충분한 교육적, 감정적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보이는 중산층의 전업주부인 엄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마더링의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엄마들이 스스로의 마더링에 대해 만족하거나 자신이 없는 만큼, 수험생인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도 만족함이나 적절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면, ‘50대의 행복’은 자녀의 대학입학 결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어느 한국의 엄마가 교육문제에서 자유롭고 자기주도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