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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YHEE Jean Jul 23. 2020

한국의 남남갈등 vs. 서독의 서서갈등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의 기억 ①

살포되는 전단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그 살포 '행위'에 담긴 일방주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분단국가 관계의 비정상성을 더욱 강화한다


목차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의 기억① 한국의 남남갈등 vs. 서독의 서서갈등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의 기억②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의 기억③ 서서갈등 속에서 탄생한 논쟁과 합의의 문화



1.       한국의 남남갈등 vs. 서독의 서서갈등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한국의 공권력을 둘러싼 논란에 각국 미디어가 조명을 비추기가 무섭게, 개성에 설치되었던 공동 연락사무소의 폭파 장면이 전 세계 아홉 시 TV 뉴스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현재 해당 단체들에 대한 통일부의 사무 감사는 해외 언론들의 조명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보도들의 상당수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쓰이고 있음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해당 단체들이 북한으로 풍선을 띄워 전단과 각종 물자를 살포하던 일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단 살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운동가들과 이를 막아보려던 한국 당국 간에 갈등과 긴장 관계가 형성된 것도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지와는 크게는 무관하게 쭈욱 이어지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왜 그 대북 전단 살포가 다른 의제들을 압도하는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북한 정권에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의 한 구실을 제공하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다른 (마찬가지로 중요한) 측면들 보다는, 의외로 논의되지 않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본다. 이는 “한국 사회 내 심화되는 남·남 갈등을 도외시하고 대북 관계 개선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남북 관계에만 몰두하는 것이 결코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큰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 관계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 사회가 깨달아야 한다. 남북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든, 그 현상의 유지를 내심 바라든 간에, 남북 관계와 한국 사회 안의 내부 갈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남북 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그 변화 과정에 대해 이미 사회 전반의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럴 때에만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남북 관계의 정상화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휴전이라는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대화하는 상대방에 대한 ‘대화 상대로서의 최소한의 인정’이 상대방의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정당화와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 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이 그 갈등의 원인을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거나,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방치해도 무방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의 갈등 능력을 뛰어넘는 갈등의 요소를 방관했을 때, 그것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움직임에 자양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심지어 외부의 요인과 결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 능력' 개념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분단국가와 아카이브 기억 - 갈등 능력과 비당사적 기억 그리고 문화적 기억의 관계에 대한 시론> (2019)을 참고: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999244)


한편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라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보수 진영에서도 강경한 노선을 걷는 일군의 활동가들에 방치해 놓았던 것에 진보적 가치를 말하던 이들부터 자성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살포되는 전단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그 살포 '행위'에 담긴 일방주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분단국가 관계의 비정상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상대방을 제한적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화라는 선택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에 알려지지 못했던 분단기 동·서독 간 ‘삐라 전쟁’의 기억을 필자가 찾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당시의 전단 살포 전쟁에는 동독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서독 내의 사회적 갈등, 이른바 ‘서서갈등’의 상흔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놓고 사회적 논쟁 문화가 어떻게 성숙했는지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의 기억 분단기 동·서독 삐라 전쟁에서 이어집니다)

p.s. 2편을 포함한 나머지 내용을 함께 담은 책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을 최근 출판하였습니다. 책에 없거나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은 브런치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2021.9.4.)



#힙베를린갈등의역설 #독일정치문화연구소 #이은북 #즐거운갈등 #서서갈등 #서독의기억 #분단국가 #기억의문화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 소장

Dr. Yhee, Jean

Direktor, Institut Politik+Kult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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