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읽은 후 해보는 생각정리
"죽음" 이 두 글자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낄수도, 다른 누군가는 답답함이나 갑갑함을, 또 다른 이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두 글자를 노트위에 꾹꾹 눌러써보고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죽음을 인지하였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우리는 모두 죽는다. 노화를 맞이하던 사고를 당하던, 병을 앓던, 사람의 삶에 최종 종착지는 동일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 죽음이라는 종착점을 잊고 살아간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 역시 죽음이 찾아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전까지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자신에게 찾아와 손짓하였을 때,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살아오면서 죽을 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두번 정도 있다. 한번은 전자 기판을 만들다가 감전당한 적이었고, 다른 한번은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런 사고나 큰 병이 아니고서도 불쑥 찾아 올 수 있지만, 그런 경험은 죽음이라는 존재를 조금더 구체화 시켜 준다.
그런 경험의 탓인지 책을 읽고난 여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특히, 잠들기전 '지금 감고 있는 두 눈을 다음 날 아침 뜨지 못하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의식적으로 생각해볼 때도 있고, 불현듯 떠오를 때도 있다.
나에게 던진 그 질문은 상반된 답을 던진다. 어쩌면 책속에서 상반된 긴장감이라고 말하는 그런 상태일지 모르겠다. 하나는 아쉬움이고, 하나는 허무함이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만들어낸 것들이 어차피 눈을 뜨지 못하면 다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아마 사람들이 죽음을 애써 부인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마 이런 허무함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일것 같다.
반면 미처 끝내지 못한 것들.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가족과의 관계, 쓰려고 했던 글들, 공부하고 있던 것들 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성과를 확인하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나면 모리교수가 남긴 글귀가 생각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아마 이 문장의 의미가 죽음의 방법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마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수 있을거라 말한 것은 아니라 본다. 저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이냐고 말하는 것이겠지.
책속에서 모리 교수가 죽음을 뒤에 아무것도 없는 끝이라고 보고 허무함에 빠져 들었다면, 제자 미치 앨봄을 만나지 못하고,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출간되지 못 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삶과 마지막 순간 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로 책이 완성되었다.
다시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오늘이 그날이냐고.' 그 다음 내 뒤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끝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뒤를 본 사람도, 돌아온 사람도 없으니까.
책을 읽고 난뒤의 여훈일까. 나 역시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신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간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으면 좋겠다. 기왕 살다 간다면 조금더 멋지게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내 가족에 만이라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