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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Feb 09. 2021

[생각정리] 나이드는 것에 대하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읽은 후 해보는 생각정리

세상 사람들은 젊음을 강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들어보게. 젊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 난 잘 알아. 그러니 젊다는 게 대단히 멋지다고는 말하지 말게. 젊은이들은 갈등과 부족한 느낌에 늘 시달리고, 인생이 비참하다며 나를 찾아오곤 한다네. 너무 괴로워서 자살하고 싶다면서...


되돌아 보면 나의 20대는 찬란하게 빛나지 못했다. 내가 보는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가고 여유로워보이고, 똑똑하고, 멋져보였다. 당시의 나는 알바비 받는 날을 기다리며, 내 지갑의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며 오늘 저녁은 라면인가 김밥인가를 걱정하며 살고 있었다. 학과 전공은 보면 볼수록 어려워지는데, 동기나 후배들은 순조롭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낸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이 그 시절의 내가 빛났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막연한 기대만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 아마도 있을거라고 말하는 잠재된 가능성 만큼이나 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대로 토목과를 전공해서 취업을 한다면 시공사와 설계사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공무원과 같은 공직으로의 진출은 어떨까? 공직은 연봉이 짜다는데, 아니면 토목이 아닌 다른 곳은 어떨까? 그런데 나 이것 말고 다른 것 뭘 할 수 있지? 걱정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으면 했지만, 성인이라는 위치는 이제 내 길을 내가 찾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전공을 살려 토목과에 왔지만, 사회 초년생의 길은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작은 실수라도 하고 나면, 그 실수가 어떠한 형태로 나에게 돌아올 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계속된 야근과 주말 출근에 지쳐갈때쯤 이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몰라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밤들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취업을 하고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고민들이 줄어들었다. 직장을 선택하고 나니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축약되어 가보지 못했던 다른 길에 대한 번민도 사라졌다. 가끔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그때는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다독인다.

일하며 발생한 실수는 어떻게 돌아오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경험으로 겪어보니 걱정도 조금 덜게 되었다.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야근과 주말 출근도 그간의 경험으로 어느정도 고생하면 다시 평소로 돌아 올 수 있을지 알게되었다.

나이를 하나하나 먹어가고, 삶이 그리고 내 주변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졌다고 생각된다. 여전히 앞날은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오히려 걱정이나 우려되는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나이는 차올라가는데 무언가 해놓은것이 없다는 압박이 다가온다. 쌓아온 나이 만큼 내면과 외면으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과연 그 성장을 이루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그런 생각이 더 자주 찾아온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사회에 발을 내딪고 적응하느라 세대가 바뀐다는 느낌이 없었다. 20대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이었다.

사회적 통념 탓인지, 40이라는 숫자는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특히 불혹은 흔들림이 없어진다는 나이이건만 나는 바람앞은 갈대처럼 나폴나폴 흔들린다.

정신적인 면에서 내 생각들은 마치 20대와 같은 느낌이다. 몸은 나이들어가는데 정신은 성숙되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이 같기도 하다. 내 속에는 10대의 나, 20대의 나, 그리고 30대의 나도 있고 곧 40인나도 있어야 하는데 20과 30의 사이에서 멈춘 느낌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면에서는 나이가 절감된다. 그래서 몸과 정신에 괴리가 오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런가 몸이 정신을 못따라가주는것 같아 서글플때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이정도 쯤은 했을것 같은데..

육체와 정신을 넘어 사회적으로 무언가 이루었나도 되돌아 본다. 10여년간 일을하며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경력은 쌓아왔지만, 나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무언가, '이게 나다'라고 할 수 있는 상징성이 없다.

얼마전 마흔에 관한 책을 읽었다. '마흔, 계속 이대로 살수는 없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이다. 마흔이라는 시기에 찾아오는 정신과 몸의 괴리에 대하여 고민한 기록이었다. 나의 고민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달까. 그리고 인생의 절정을 벗어난 내 육신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저 혼자 뛰쳐나가고 있는 정신도 다독여 함께 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야.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중요한것은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가느냐라는 점이다. 나중에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서 쓰겠지만, 사실 모리교수의 말처럼 인생의 의미를 찾고 나면 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테다. 산의 정상이 코앞에 있는데 가보지 못한 다른 루트가 있다고 다시 내려가서 올라올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젋음은 마냥 싱싱하고 즐거울 것 같지만 그것은 나이든 사람의 추억 보정일 뿐이다. 그렇게 상상하는 사람도 자신의 지난날을 세세하게 들여다 본다면 그렇게 신명나게 즐겁지만 않았다는것을 깨닫지 않을까.

지금의 나에게 지난 시절만큼 움직이라고, 열정을 가지라고 한다면 나는 그 요구에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나이는 일방적인 흐름이니까. 그 시절은 그저 추억으로만 뭍어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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