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발주처 출장. 같은 시기에 발주된 사업들의 설계서 제출하는 날이라 같은 업종에 있는 회사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종종 보던 분들의 모습도 있고, 간만에 만난 분들도 있다.
그 중에 예전 같은 회사에서 몇 년간 동고동락하다가 각자 퇴사 후 다른 회사에서 자리 잡은 옛 동료도 만났다. 그 분도 나도 이제는 다른 회사에 있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발주처에서 업무를 마치고 나오니 점심시간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동료와 함께 밥을 먹기로 하고 이동을 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먹을까 싶어서 대전시 서구에 위치한 정부청사 근처로 이동했다. 사실 발주처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식당으로 이동하던 중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 그 곳으로 장소를 급 변경했다.
정든밥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있는 이 식당은 속초식 비빔밥이라는 메뉴를 전문으로 한다고 한다. 전주식이나 진주식 비빔밥은 익히 들어봤지만, 속초식이라는 이야기는 첨이라 호기심이 동했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식당에 들어갔다.
이 식당은 식사 메뉴는 비빔밥 단일 메뉴다. 다만 사이드로 샐러드와 들기름 막국수가 있다. 메뉴가 단일이라 그런지 입장하자마자 자동으로 주문된다고 하며 자리로 안내한다. 식당 내부는 깔끔하게 생겼으며, 내부에 들기름의 고소한 향기가 가득하다. 내부 한켠에 위치한 기름 짜내는 기계가 그 향기의 진원지로 보인다.
자리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메뉴가 나온다. 제일 처음 나온 음식은 곁들임 음식으로 나온 들기름 국수. 사실 사이드 메뉴에 있는 들기름 국수를 보고 추가 주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비빔밥을 주문해도 맛을 볼 수 있는 국수가 소량 제공된다.
들기름 막국수는 얼마전 당진의 미당면옥에서도 맛본적 있었는데, 꽤 괜찮은 메뉴였다. 비빔밥 전 제공된 이 막국수는 먹고나면, 사이드 메뉴에 있는 한그릇을 주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보여준다. 소스와 김가루를 뿌리고 비벼서 입에 한입 넣고 나니 순식간에 입안에 고소함만 남기고 국수가 사라졌다. 적당한 탄력을 가진 면발의 식감도 좋았고, 기분좋게 고소함을 남기고 사라진 소스도 인상적이었다.
음식을 서빙할 때 직원이 함께 나오는 밤은 오징어 먹물이 들어가있다고 알려준다. 그 덕에 밥그릇의 뚜껑을 열기전 기대감이 증폭된다. 왠지 흑미를 잔뜩 넣은 검은 빛의 쌀알이 나를 반길 것 같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조금 덜 하얀 쌀밥이 날 반겨준다. "여기에 뭔가가 들어갔다!!"라는 인상은 남겼으니 오징어 먹물은 제 역활을 다 한 것 같다.
비빔밥의 대접은 내용물이 풍부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란색과 초록색의 대조가 인상적. 그리고 그 가운에 불그스름한 오징어 젓갈은 이 그릇의 주인공이다. 젓갈은 비빔밥을 위해 저염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밥을 넣고 비벼 먹어도 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은 고추장 특유의 감칠맛이 있는데, 젓갈이 들어간 탓인지 그런 감칠맛이 없어서 색다르다.
고기와 같은 식감이 강한 고명은 들어가 있지않지만, 계란 지단의 부드러움과 새싹채소의 아삭함은 입앗에서 좋은 식감의 조합을 보여준다.
이 집은 나온 메뉴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는데, 황태 미역국도 인상적. 황태 육수 특유의 고소함이 맴돌고, 미역의 식감이 기억에 남는다. 미역국은 오래 삶아서 야들야들한 식감인데, 이 미역국은 미역의 식감이 남아있다. 사실 미역, 특히 생미역은 비릿함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안먹는 편인데, 이 미역국의 식감은 마음에 든다. 미역국 맛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들어올때 간판 옆에 둔산점이라는 것을 보고 프랜차이즈라고 생각했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집사람이 생각나 집근처에도 체인점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아뿔싸!! 전국에 대전 한 곳만 있다. 아마도 본점이자 1호 체인인가 보다. 그게 가장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