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시설과 건축물, 토목기술자와 건축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는 자리처럼 나를 소개해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럴 때 직업을‘토목 설계’라고 하면 종종 건물 설계와 비슷한 것이냐고 되묻는 경우가 있다. 반면 정 반대되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공 현장에서 일한다고 생각하고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면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득 토목과 건축이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 들었다. 건축과 토목이 어떤 것인지 묻는다면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건축은 뭔가 지적이고, 사무실에서 건축물을 설계하는 이미지가 연상되고, 토목은 현장에서 하이바를 쓴채 시공을 진두지휘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선입견이 무섭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건축들은 실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굉장히 멋있게 나온다. 하지만 토목기술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는다. 현실은 둘 다 사무실에서 야근하며 근무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지금 당장 토목과 건축의 차이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현업에 있는 사람들도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 두 분야 모두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설 시설물들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과연 그 차이는 어디서 발생했으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참고로 이 글의 내용은 <토목 공학의 역사>라는 책의 내용과 여타 다른 토목 및 건축 관련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골격으로 하여 쓰여졌다. 토목 공학의 역사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해당 책을 추천한다. 대학 재학시절에 토목공학을 배우면서도 학문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었다. 기껏해야 역학에서 사용되는 공식이 ‘언제, 누가 발표하였다’ 정도였는데, 이 책을 통해서 해당 분야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감이 온다.
우선 토목과 건축을 구분해 보자. 토목과 건축의 차이는 시설물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토목과 건축의 목적은 동일하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물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의 용도에 따라서 토목시설과 건축물로 나뉘게 된다.
토목시설과 건축물, 두 가지 모두 사람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건축물의 경우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대부분을 말한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건축가의 입장에 따라서는 건축물로 보느냐 건물로 보느냐는 달라진다. 일례로 일반적인 창고와 잘 지어진 주택이 있을 때 창고는 건물이라고 지칭하고, 주택은 건축물이라고 지칭한다. 이 둘의 차이는 건축가의 의도가 해당 시설에 반영되었느냐 되지 못했느냐에 있다. 전자의 경우 효율과 안정성을 추구하여 지어졌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에 건축물로 구분할 수 가 없게 된다.
건축물의 경우 사람이 살고있는 공간에 대한 대부분을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건축가의 입장에 따라서는 건축물로 보느냐 건물로 보느냐가 달라진다. 일례로 일반적인 창고와 잘 지어진 주택이 있을 때 창고는 건물이라고 지칭하고, 주택은 건축물이라고 지칭한다. 이 둘의 차이는 건축가의 의도가 시설에 반영되었느냐의 여부에 있다. 전자의 경우 효율과 안정성만을 추구하며 목적만을 위하여 지어졌기 때문이다. 창고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과 무너지지 않는 안정성만을 확보하면 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 건축가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한다. 주택의 입구에서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의 동선계획과 그 경로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관까지 건축가는 의도한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선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된 경험을 체험토록 하고자 한다.
반면 토목시설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기반시설 대부분을 지칭한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사용하고 있는 것들 대부분이 토목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수도로 공급되는 물을 사용하여 씻고, 음식을 준비한다. 이때 상수도로 공급되는 물과, 사용한 물이 배출되는 하수도 역시 토목시설이다. 이제 출근을 위하여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나 버스를 이용한다. 아니면 지하철을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공공교통 수단 및 도로와 교량 역시 토목시설이다. 회사에서의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한강변 고수부지에서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천의 제방과 친수공간의 제공을 위한 고수부지 역시 토목시설의 하나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호흡하고 있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토목시설들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역사적 시설물로 건축과 토목공학의 구분은 경계가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트, 잉카 문명의 마추피추, 로마의 포장도로와 수교,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이나 콜로세움, 현대로 넘어와 감각적 디자인을 뽐내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등 건축물로 봐야할지 토목시설로 봐야할지 애매한것도 사실이다.
이 두 분야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한 시점은 오래되지 않았다. 산업화 이후 18세가에 접어들며 자연과학에 기초한 토목공학이 태동하기 시작하고 건설기술에서 건축과 토목은 본격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그 시기 이전까지 토목과 건축은 구분되기보다 건설기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묶여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 둘은 언제, 어떻게 구분되고, 토목기술자와 건축가가 어떻게 다른 걸까?
현대적 의미에서 토목기술자와 건축가의 차이를 알아보자. 토목공학은 Civil Engineering이라고 표현된다. 토목공학을 직역하면 민간공학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목 공학은 사람들이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시설들을 만들기 위한 실용학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설물의 목적에 맞지 않게 토목이라 표현되고 있다. 토목이라고 불리우게 된 연유는 두 가지 가정이 있는데, 첫번째는 기원전 1세기경 중국 희남국의 왕 유안의 시대에 지어진 희남자의 내용 중, 왕이 민초들을 위하여 축토구목을 해주었다는 표현에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는 단순히 공사를 할 때 흙과 나무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土木이라고 표현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토목공학이라는 표현은 만들어지는 성과나 그 시설물의 효용성을 생각한다면 표현의 범위가 다소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토목기술자는 Civil engigeer라고 표현되며, 기본적으로 기술자를 지칭한다. Civil Engineer에서 엔지니어라는 표현은 전쟁기술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이나 GPS와 같은 기술들은 전쟁기술에서 발전하여 민간으로 퍼져온 것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고대 및 중세에도 대부분 기술들은 군대를 통하여 발전되어 민간으로 전파되었다. <토목 공학의 역사>에서는 엔지니어라는 용어가 전쟁 기구를 제작하거나 성곽을 구축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으며, 이는 전투의 기술적 도움의 합성어인 “ingenia”로 알려져 왔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준다.
그러던 와중 현대 토목공학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제니장교들이 민간의 공공작업을 도맡아 수행하게 되면서 군사공학과 민간공학을 구분하여 지칭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이를 뒷받침 하듯이, 고대 로마에서도 전쟁 시 도로 및 축성을 담당하던 기술자들이 평상시에는 도로 포장을 관리하거나 수로 등의 민간 시설의 건설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토목기술자가 전쟁사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 건축을 의미하는 architecture는 그리스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어에는 architekton이라는 최상위 기술자라는 단어가 있다. 서양의 고대 및 중세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아치(Arch)와 볼트(Vault) 기법은 당시 최고의 건설기술이었다.
고대의 기술자들은 현대적 의미에서 기술자와는 조금 다르다. 현대의 기술자들은 자연과학에 기초한 역학적 계산으로 구조물의 형태 및 재료의 한계 하중을 계산하여 안전성을 확인한다. 반면 고대의 기술자들은 다양한 시공 경험으로 축적된 직감과 지식을 기반으로 건설을 수행하였다. 그래서 아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건설 경험이 풍부했던 고급 기술자였으며, Architekton이라고 지칭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콜로세움이나 대수로, 신전, 공화당 같은 국가차원의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였을 때 이러한 최상위기술자들이 임명되었는데 그 명칭이 후대로 넘어오며 건축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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