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배치기라는 힙합듀오가 있다. 한창 힙합장르 노래를 들을때 좋아하던 가수인데, 이들의 노래 중 '아홉수'라는 곡이 있다. 나도 종종 듣는 노래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힙합 장르 리스트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노래는 청년기의 희노애락을 표현했는데, 후크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대학가면 끝난것 같지? 아니야. 취업하면 끝난 것 같지? 아니야'
라는 부분이 반복된다. 그 뒤에 '결혼하면 끝난것 같지? 그건 맞아' 라는 부분이 더 재미있는 부분이다. (사실 결혼해도 끝나지 않는다)
나의 취업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2월 학교를 졸업하고 4월 취업했다. 졸업후 2달만에 취업했으니 나의 취준생 기간이 길었다고 할 수는 없다. 길게 봐줘도 기말고사가 끝난 12월 무렵부터 취업 준비를 했으니 나름 5개월 가량 열심히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럼에도 최근 취준생들과 비교해봐도 길게 준비했다고 하긴 어렵다. 당시 사회는 불경기였지만 그 와중에 운이 좋았는지 4대강 사업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었고, 토목과를 졸업했던 나는 불경기였음에도 중견정도 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다시 노래로 돌아와서 대학시절의 나는 취업하면 끝난 줄 알았다. 끝난다는 의미는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취업으로 인생의 수많은 목표 중 하나가 달성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업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취업은 하나의 통과점일 뿐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도 삶은 계속되었다. (이건 뒤에서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취업하고 나면 공부는 더 이상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간 이어온 배움의 길이 취업으로 종지부를 찍는다고 봤다. 솔직히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열심히 회사에서 할당된 업무만 수행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알바나 회사에서 일하는거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약간의 기술만 배우면 되는 알바처럼 수습기간에 잠시 일을 배우면 그걸로 정년까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며 월급을 받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취업관련 강연을 듣지만, 취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자소서, 면접보는 노하우들이나 들었지 거기서 뭘하는지, 얼마나 빡치는 상황을 마주하고, 치사하고, 눈치가 보이는지는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배울 것이 학교에서 배우던 것보다 더 많다는 것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그런 순진무구한 생각을 가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었다고 본다.
그런 순진무구한 상태로 입사한 회사. 토목과를 졸업한 나는 토목 설계회사에 입사했다. 설계회사가 하는 업무는 시공사가 시설물 설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성과품을 만드는 일들을 한다. 입사 초 업무에 필요한 기준과 해설서를 받아서 읽던 나에게 첫 임무가 떨어졌다. 비가 올 때 빗물이 모이면 그걸 흐를 수 있도록 하는 배수구조물을 설계하는 것. 다른 현장에서 만들어진 도면 한장(샘플)과 현장이 나온 측량 자료를 전달 받은 내게 구조물 설계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고 하는 것 같은 미션이 떨어졌다.
당연히 대학교는 설계실무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거기서 배운 것은 공학적 지식 뿐. 그걸 이용하여 설계를 수행하는 것이 기술자다. 나는 설계회사에 취업하면서 설계기술자가 되었지만, 타이틀만 설계기술자였지 속알맹이는 학생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공학도에서 기술자가 되기 위한 공부였다. 그래서 책들을 찾아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며 도면을 한땀한땀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토목기술자가 되기위한 공부는 시작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계속 진행중이다.
'이 공부는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끝이 있을까?'
이제는 공부에 끝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많은 분야에서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다. 기술 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회 각종 시스템들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종종 아닐때도 있지만) 그리고 각종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그 영향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토목 분야도 변해간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 2D로 이루어지던 설계 성과는 이제 BIM처럼 3D를 넘어 시간을 고려한 4D의 영역까지 포함하기 시작했다. 비단 설계 성과 뿐이 아니다. 설계라는 것이 단순히 성과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종 법리해석이나 행정처리가 필요한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법제처에서 국계법이나 농지법, 산지법들이 개정되면 해당 사항들을 파악하여 실무에 적용해야 한다.
업무를 하며 배워야 하는 지식의 영역은 내가 생각하던 범주를 벗어기도 한다. 때때로 그 범위가 부담스러울때도 있다. '설계를 하며 이것까지 알아야 한다고?' 싶은 내용들도 있다. '포기하면 쉬워!!'라는 말처럼 배우는 것을 멈추면 당장은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모른다고 하면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도 그 흐름에 멱살 잡고 끌려가 앞으로 나아가기위해 변화한다. 내가 이일을 하는 동안 그 변화에 발을 맞추야 한다면, 나는 꾸준히 공부할 수 밖에. 취업하면 끝나지 않는다. 공부는.... 계속 된다.
회사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에거 시키기보다는 뭔가 하려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일잘하는 사람이 더 바쁘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내 직업을 바뀌지 않는 이상 그 변화에 맞출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