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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Jul 27. 2020

[토목&하천이야기]토목과 건축 vol.3

제너럴리스트 토목기술자와 건축가


  건축은 본질적으로 물체를 디자인 하지만, 인간이 사용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목적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벽을 구성하여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공간적 겸험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적 소양 한스푼, 철학적 소양 한스푼,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든다. 즉 일종의 제너럴리스트나 지휘자 같은 영역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혼자 다해먹는 만능인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시대는 새로운 영역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그 주변의 환경과 역사를 아우르는 컨텍스트(context)가 될 수 있는 것이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건축물이 기념비적 혹은 유의미적인 의도를 가진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의 <유럽사 여행>에서 유럽의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구한 세월을 지켜온 건축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은 하나의 지표로서 그 자체로도 공간을 제공하지만, 건축물을 둘러싼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역의 특성과 문화가 상호작용을 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반면에 토목의 설계는 기본적으로 효율과 안전성의 확보이다. 시설물 설계에 있어서 기초는 튼튼하게 받쳐 줄 수 있는지 토질역학으로 시작하여, 구조물이 강건하게 버틸 수 있는지 구조해석이 필요하다. 내가 종사하는 하천 설계의 경우 홍수량에 대한 치수적 안정성을 담보 할 수 있는지 유체역학과 수문학의 영역이 필요하게 된다.      


  건축이 인문학적, 사학적, 철학적 부분들을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라면, 토목은 다른 의미에서 제너럴리스트다. 시설물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기술들을 접목하여 하나로 완성하는 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하천 분야에서 일정 구간의 하천의 정비사업을 설계하게 되면, 하천의 수리분석을 위한 수자원분야와 제방의 제체 안정성을 위한 토질 및 기초분야. 제내지의 내수를 배수하기 위한 배수구조물과 교량설치시 구조물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구조분야, 교량 등 하천의 제방도로 등을 위한 도로분야. 하천의 고수부지 위로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이 들어가게 될 경우 생태조경분야가 모두 필요하게 된다. 하나의 사업을 위하여 이러한 분야들을 모두 접목하여 하나의 시설물로 만드는 과정. 그것이 바로 토목 공학이다. 



토목기술자 vs 건축가


  앞서 토목 공학은 과학과 역학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고대나 중세의 대규모 토목시설 및 건축물은 국가의 재정으로 이루어졌다. 현대도 공공사업은 국가의 재정으로 시행되지만, 당시에는 사업의 시공을 국가 규모에서 수행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예산이나 공기가 늘어나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근대 및 현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예산 자체는 공공의 재산을 이용하지만, 설계 및 시공의 시행자가 민간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리고 대규모 시설들은 효율성을 따져서 최적의 규모와 단면 형태 및 노선 등을 고려하여 경제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념적인 의미를 담지 않는 토목시설의 경우 효율성과 경제성에 반하는 필요치 않다고 여겨지는 형식적인 것들은 배제하게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하지만 건축은 공간적 의미를 담기 위하여 기념비적 성격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분야는 한 가지 시설물을 설계하게 된다면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게 된다. 건축가는 그 공간이 안에 있는 사용자에게 어떠한 경험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접근한다. 하나의 시설물 속에 동선을 계획하고 공간에 접촉할 때마다 서로 다른 공간이 제공하는 경험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로 디자인을 결정하게 된다.  

    

  반면 토목 기술자는 이 시설물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최소의 재료를 사용하여 최적의 안전성을 추구하며 시설물이 목적한 바의 기능을 제공 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설계하게 된다.      


  토목의 영역에서만 일을 근 10년 넘게 해오다 최근 공모사업을 통하여 하천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내의 엔지니어링 회사와 국내외 건축사들이 협업하여 진행 중으로,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값진 경험을 진행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하천정비사업은 토목사업으로 발주되어 엔지니어링 업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는 지역발전의 상징성과 디자인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건축회사를 포함한 다양한 회사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하나의 시설물에 건축가와 토목기술자가 함께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하게 되면 서로간에 상충되는 의견들이 대거 발생하게 된다. 토목기술자의 입장에서 “왜? 이걸 해야 하는건가?”싶은 부분들을 건축가는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공간적 의미를 갖는 시설들은 효율성과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효율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형태로 구성하게 되면 공간적 의미가 축소되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 하는 듯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가와 토목기술자는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최종적으로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서로가 추구하는 내용에 따라 안정성을 확보하며 디자인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서로 깍아내며 맞춰가는 과정을 진행한다.      


  토목기술자의 입장에서 건축가들을 바라보는 경험은 색다르다. 건축가들의 디자인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있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주변을 잇고 조화로우면서도 특별해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끝임 없이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설계자로서 토목기술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컨소시엄이 구성되어 업무를 수행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토론이었다. 우리나라 토목업계는 굉장히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발주처와 용역사의 관계도 그렇지만, 회사 내부의 업무 구조 역시 굉장히 수직적이다. 60년~70년대 국토개발사업을 하며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며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다. 경부고속도로와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중심에는 토목사업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전국에 뚤린 고속도로와 기찻길로 인하여 물류가 원할히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이 7년 걸려 작업했던 고속도로 사업을 우리는 100km나 더 길지만 더 짧은 기간에 했다고 자랑스레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고 결정권자의 강압에 의하여 기술자들을 갈아 넣어 시공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빠르게 시설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유롭게 노선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영향이 어떻고 하면서 토론할 시간이 있을까? 결국, 결정권자의 결정에 의하여 제반사항들이 확정되면 기술자들은 그에 맞춰 설계를 진행하여 빠르게 진행되었다.      


  반면 다양한 회사가 뭉쳐서 진행되어 가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발주처와 용역사, 용역사와 용역사 간에 회의와 토론이 기본이 된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제시된 의견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하여 논하고,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서로 절충하여 보완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생각이 더해져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두가지가 더해져서 새로운 하나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외부의 시각과 생각이 더해진 설계요소들이 더해지자 조금 더 풍성한 결과들이 만들어진다. 누가 보면 혁신적이라고 할 것이고, 다른이가 본다면 말도안되는 설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토목기술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사실 토목공학이라고 해서 빠르고 효율성만을 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라던가 한국의 광안리 대교처럼 미학적인 요소가 들어가 다른 시설물과 다르게 기념비적인 성격을 지닌 시설물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천이라고 해서 그렇지 못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 도 있다.


“진정한 엔지니어는 창조적인 상상력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생각과 더불어 기술적, 경헤적인 실용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토목공학의 역사>     


앞서 언급했던 <토목공학의 역사>에서 나온 내용 중 인상 깊은 구절이 다. 기술자로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지니고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역학적 특성으로 만들어 둔 기준과 지침에 이끌려 기존의 설계를 답습하여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기준과 지침이라는 토대위해 하여 설계의 이념이 담긴 시설물 설계를 하는 기술자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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