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는 길에 벽이 보인다면 다른 길로 우회하는 것도 멋진 일이잖아요. 다들 도망을 여행처럼 생각하면 좋겠어요. 꿈은 꾸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는 거죠.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업사이클링] 중에서
작년 여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를 지원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한 달 안에 될 거야!라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3번째 탈락을 끝으로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도전을 그만뒀다.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도서 인플루언서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 책 읽기 2. 책 내용 정리 및 포스팅 기획 3. 감명 깊은 문장 캘리그라피로 쓰기 4. 캘리그라피 엽서 및 도서 사진 촬영 5. 포스팅 완료
책 읽기에서 이미 2시간 이상 소요했고 이후 3시간이 더 걸렸다. 당시 나는 수업과 공방 이사를 병행 중이었고 밤 8시 퇴근 후 5시간에 걸쳐 포스팅 하나를 완성했다. 한 달이면 될 거란 자만심에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인 결과는 처참한 실패.첫 실패 후 충격에 빠졌다. 이렇게 열심히 한 내가 떨어지다니.
두 번째 도전은 오기로 했다. 이전에 포스팅한 캘리와 기타 주제를 모두 비공개처리하고 책 분야를 세세하게 나눴으며 출판사 서포터즈와 서평 부분을 늘렸다. 준비기간은 약 40일. 시/에세이 전문 분야에서 소설/인문 분야를 추가하고 도서와 관련된 이웃을 늘렸다. 그리고 재도전, 이번엔 탈락 메일이 더 빨리 왔다. 두 번의 탈락 후 그제야 내 블로그의 문제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19년부터 운영한 나의 블로그는 캘리그라피 포스팅이 1000건이 넘었기에 도서 분야로 지원하기엔 게시글 비중이 맞지 않았다. 책 포스팅 또한 순수 책 이야기보단 캘리를 곁들인 게시글이었던 것.
(나는 캘리+책이 남들과차이점을 두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네이버입장에선 주제가 헷갈린 것 같다)
자만심에서 오기, 그다음은 미련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 포기 못하는 미련. '일과 병행하는 블로그는 많아. 너만 힘든 거 아냐. 투덜거릴 시간에 일해'라고 말하며 세 번째 도전을 버텼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썸네일을 통일하고 그림책 분야를 제외한 에세이/인문/주간독서 포스팅을 기획했다. 좋아하는 어른 그림책 분야가 빠지고 인문과 자기 계발이 추가되니 매일 지옥이었다. 관심 없는 분야를 읽는 것도 힘든데 정리에 포스팅까지... 몸과 마음이 점점 더 피폐해졌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며 일이 많아지자 완성도 보단 포스팅 발행에 급급했고 계획한 책을 다 못 읽을까 초조했다. 다른 사람은 일과 육아, 인플을 동시에 준비해도 잘 해내던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일 못하는 사람이 된 기분에 자존감도 떨어졌다. 눈 뜬 직후부터 자기 전까지 온통 블로그 생각뿐이었고 계획한 일을 다 못하고 퇴근할 땐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마다 나를 달래기보단 '더 열심히 해. 남들 다 이 정도는 해.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며 나를 더 채찍질했다.
그렇게 3번째 신청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예전에 읽은 책 속 문장이 생각났다. 드로우앤드류님이 슌님을 인터뷰한 문장이다. ‘뒤쳐지고 못해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나를 한계에 가두고 싶지 않아 도망친다. 도망은 포기가 아니다’라는 말. 갑자기 생각난 문장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 나는 무엇을 위해 도서 인플루언서에 목숨 걸고 있는가. 2번째 탈락 메일을 받았을 때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와 그만두자니 실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지로 끌고 가고 있었다. 생각난 문장을 제대로 읽고 인플루언서 도전 이유를 찾았다. 무슨 이유로 나는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여기에 목숨 거는가, 좋아하는 책과 캘리가 점점 싫어지는데 왜 포기하지 않는가. 속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며 이유를 찾았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인플루언서 네임드가 같고 싶어서.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이유를 찾고 되물었다. 이름 하나 갖겠다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도 되는가? 결론은 아니. 이후 과정은 심플했다.
세 번째 신청을 클릭했고 탈락 메일 받은 뒤 미련 없이 그만뒀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만둘 수 없어. 남들 다 이 정도는 해'가 아닌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너는 충분히 할 만큼 했어. 도망쳐도 괜찮아'로 생각을 바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만두길 참 잘했다. 지금까지 끌고 왔어도 나는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그때 새 블로그를 파던가 계획하에 진행했음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도망친다는 게 실패한 사람으로 각인되는 것 같아 오기와 미련으로 붙잡고 있었던 도서 인플루언서. 도망쳤을 때 더 멋진 걸 찾았단 슌님의 인터뷰를 읽으며 깨달았다.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고 미련하게 붙잡기보단 과감히 놓았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단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