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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Aug 23. 2024

남편 없이 떠난 3박 4일 국내 여행

허름한 모텔에서 2만보 찍힌 걸음 수를 보고 있으니 20대 무전여행이 생각. 저렴한 금액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지도에 의존해 걸었던 골목길들...


결혼 10년 차 남편 없이 두 번째 국여행을 떠났다.


수원으로 떠난 3박 4일, 술김에 예약한 호텔(이 아니다. 모텔이 확실하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문과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바닥, 앞 객실 문이 열릴 때마다 내 객실 문도 같이 흔들리는 다소 위험한 장소였다. 취기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내 실수도 있지만 상업 후기에 완전 낚였다.


첫날밤 다이소에서 급히 산 소독 티슈로 청소하며 슬픔에 잠겼다. 무서워. 계속 쿵쿵거리며 움직이는 문에 신경이 곤두선채 서둘러 정리하고 씻었다. 씻고 누우니 더 울적해진다. 내일 아침 멀쩡히 눈 뜰 수 있을까? 조금 더 꼼꼼하게 찾아볼 걸, 섣부르게 결정하지 말 걸.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자 숙소 오기 전 직바에서 들었던 래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밤새 뒤척이다 해 뜨자마자 나왔다. 전 날 숙소 컨디션에 놀라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배고픔에 쓰러질 것 같다.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에너지바 섭취 후 영양제까지 챙겨 먹은 뒤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서둘러 출근하는 직장 자식들 배웅하는 엄마, 여행 후 떠나는 가족 등  냄새나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다.


오전 9시. 이른 아침부터 30도 넘는 폭염이지만 기분 전환하려  행궁동까지 걷기 시작했다. 10시 30분. 더 이상은 걷기 힘들어 쉴 곳 찾두리번거리는데 이럴 수가, 대부분 가게와 카페가 12시에 연다. 그 흔한 스벅과 편의점도 안 보이고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발견한 도서관. 서둘러 들어갔다. 물도 마시고 땀도 식히다  구경하며  오전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더위 식힌 뒤 오후엔 저장해 둔 맛집과 카페 투어하며 혼자 시간 보냈다. 돌아갈 숙소가 걱정되지만 오늘 밤부터는 일행이 있다. (다행이다!) 좋았던 뮤직바 재방문을 끝으로 둘째 날 여행을 마쳤다. 숙소로 돌아와 일행에게 숙소 에피소드를 말하 잠들었다.


셋째  아침, 지인에게 좋았던 도서관을 소개하고 예해 둔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본격적으로 행궁동 투어를 했다. 추천받은 독립서점과 장해 둔 카페 방문하며 시간 보낼 무렵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우연히 들어간 소품샵에서 판매 중인 편지 서비스. 4가지 주제 중 한 개를 선택해 A에게 편지 쓰면 앞서 쓴 A의 편지 중 하나를 받을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A에게 받은 편지를 읽자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만개한 겹벚꽃 사진 뒤 작고 둥근 글씨로 쓴 편지는 '장마철 방문해 아쉽지만 이 또한 낭만이라 생각해' 내용이었다. 한 번 읽긴 아쉬워 두세 번 읽어 내려가니 편지 내용과 다르게 '고생했어, 쉬어도 돼. 앞으로 잘될 거야'로 읽혔다.


바쁘게 지낸 상반기를 보상받고 싶어 떠난 여행. 고생은 남편도 했는데 혼자 와도 되는지 욕심부리는 게 아까 마음이 불편했는데, 익명의 편지에 크게 위로받았다.


좋아하는 책 [제철 행복]에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틈틈이, 미리 시간을 비워두며 행복을 즐겨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당시 읽을 땐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여름휴가를 보낸 지금 이제야 이해된다. 


일 욕심에 걷거나 쉬기보단 뛰는 편인데, 이번 여행을 통해 즐기는 법을 배웠다. 한때 유행한 굳이 Day처럼 행복을 위해 굳이, 미리 시간 내 나를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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