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편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꽃이 피고 진다.
내 마음에 핀 꽃, 당신 마음에 핀 꽃, 그 꽃을 잃어버리지 말자. 언젠가 반드시 만개하게 될 테니까. 당신도 꿈처럼 피어날 테니까.
[완성되지 않은 나와 당신이지만] 중에서
개인 카페에서 일하며 메뉴판과 꾸밈을 담당했기에 단골분이 주신 캘리그라피 책과 펜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공유하는 SNS 채널에 내가 쓴 글씨를 올리고 휴일에 본 영화 제목을 나만의 스타일로 써보고자 새벽까지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캘리그라피에 점차 빠져들 때 본격적으로 전문가에게 배우기로 결심했다.
먹고사는 것만 생각해도 빠듯했던 20대, 내가 취미생활을 한다는 게 그땐 아주 큰 결심이었다.
바리스타 특성상 비정기 휴일을 고정 휴일로 바꾸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배려로 시작할 수 있었다. 새벽까지 일한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오전엔 그림, 오후엔 글씨를 배웠다. 그렇게 한 달을 배우고 나니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고민 끝에 카페를 퇴사했다. 낮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문가 과정을 시작했다. 3년을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배웠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때 코로나가 터졌다.
이제 좀 나를 알아보는구나! 싶을 때 터진 코로나. ‘제제캘리’를 보여줄 기회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울을 시작으로 분노, 좌절, 절망까지 안 느껴본 감정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했던가, 평소 동경했던 작가님들의 클래스를 듣고 연습하며 제제캘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와 함께 보낸 3년은 정말 이상했다.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모두 잃었는데 코로나로 되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육체 활동과 대화가 금지되자 정적인 수업이 유행했고 휴직 중인 사람들이 평소 궁금했던, 배우고 싶었던 글과 그림을 배우러 나에게 왔다. 출강만 하던 나에게 개인 수강생이 생긴 첫 번째 순간이었다. 스터디룸에서 1년 넘게 수업하며 부산 캘리그라퍼로 조금씩 자리 잡았고 수업 후기를 빠짐없이 블로그에 쓰며 홍보한 덕에 고정 수업이 생겼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지금의 나’는 수강생과 주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는 것.
남들이 보기엔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물 위에 떠 있게 위해 쉼 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다. 예전엔 내가 가라앉지 않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발길질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미웠는데 지금은 그런 시선을 즐기고 있다. 꿈을 이룬다는 건 재능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 생각했는데 특별한 재능이 없던 내가 꿈을 이루고 남들의 부러움까지 받고 있다니.. 아직도 신기하다.
꿈을 꾸는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앞으로 나의 꿈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그곳에 서서 내가 경험하고 가진 것들을 모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그것이 앞으로 나의 목표이자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