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해야해요.
이제 불안해진 신들은 아이들의 저항이 두려워 말하길
“너희들을 망치로 쳐 죽이리라, 거인족처럼.”
그때 제우스는
“됐어, 내게 맡겨.
너희를 번개 가위로 자르리라.
저항하다 다리 잘린 고래들처럼.”
그리곤 벼락 꽉 잡고 크게 웃어대며 말하길
“너희 모두 반쪽으로 갈려 못 만나리, 영원토록.”
뮤지컬 <헤드윅>, ‘The Origin of Love’
아주 먼 옛날, 세상을 자유롭게 굴러다니던 해님, 달님, 땅님의 아이들 몸에는 팔과 다리가 두 쌍이었다. 제우스는 이들의 세력이 커짐에 위협을 느껴 한 몸을 둘로 가르는 저주를 내렸다. 갈라진 반쪽은 다른 모습이 되어 어디론가 흩어졌다.
"그래, 우리는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해."
저주로 갈라진 내 몸, 잃어버린 반쪽을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기원, The Origin of Love다.
이야기의(뮤지컬의) 주인공 한셀은 베를린 장벽 건너편에 사는 동독 소년이다. 분단의 혼란과 미군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성 정체성조차 스스로 정할 수 없었다. 그는 통일 직전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성별을 바꾸고 헤드윅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은 ‘사랑의 기원’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트랜스젠더로서의 가혹한 현실 속 풍파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어딘가에 존재할 반쪽을 찾아 헤맨다.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다. 또 다른 사랑을 찾아 과거의 흉터를 덮고 싶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잊어라’라는 말에 심히 공감한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해줄 타인을 기다리는 시간은 야속하기만 하다. 기약 없다.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방치된 생채기는 덧나고 흉이 짙어진다.
올해 초, 인연이라고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크게 어긋났다. 생각보다 커다란 충격이었다. 심장이 타는 것 같았다. 고통 섞인 한숨조차 마음 편히 내뱉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혔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소리 없는 눈물만 줄줄 흘렸다. 꿈으로도 도망갈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고통이 발목을 잡았다.
보다 못한 언니가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잊어라’라는 명언을 기억해 낸 듯했다. 누군가를 소개해주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대화도 잘 통했고 배려심도 깊었다. 그는 나에게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위로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상대방의 호감을 내 위안으로 삼을 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 아닌 감정으로 만남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미안했다.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혼자 이겨내기 위한 방안이었다. 책을 집어 든 시간에는 오롯이 글자에만 집중했다. 책 속의 인물 그리고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받았다. 다른 시공간으로 떠나는 시간만큼은 마음속 폭풍이 잠잠했다.
책은 수시로 조언을 건넸다. 강해지라고. 마음껏 울고 괴로워하면서 마음 근육을 단련하라고. 시간이 흐르면 아픔은 무뎌진다고. 너덜거리는 가슴을 그러안고 수없이 많은 글자를 집어삼켰다.
커다란 폭풍이 한바탕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깨지며 울고 아파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실체 없는 대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다만 이제는 느려도 스스로 일어난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일 줄 알게 됐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상처가 덧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작은 생채기에는 딱지가 생긴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떨어져 나간다.
헤드윅은 반쪽 찾기를 멈춘다. 누구인지 모를 반쪽에게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것을 그만둔다. 대신 자신을 완성된 한 존재로 인정하고 거친 세상에 발을 내디딘다. 현실이 그녀를 어떻게 받아줄지 막이 내린 후 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믿는다. 한 인간으로 자신을 받아들인 그녀가 더욱더 단단해졌을 것이라고, 그녀의 상처도 내 마음의 상처처럼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