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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14. 2021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은 친구의 화법

반대로 하면 내 편을 만드는 대화법이 완성되네요.



“요즘 일이 바빠서 10시에 퇴근해.”

“나는 맨날 11시에 퇴근했어.”


“어제 벽에 차를 긁어서...”

“나는 저번에 기둥에 완전 찌그러뜨렸잖아.”


“친구랑 싸워서... 기분이 별로야.”

“나는 요즘 남자 친구랑 냉전이잖아. 진짜 힘들어.”



주섬주섬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들이 쏙 자취를 감추었다. 입술을 꾹 닫아 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았다. 대화 내내 반복되는 상황에 더 이상 호응할 기운이 없었다. 모든 대화를 ‘나는’으로 회귀시키는 능력을 가진 친구가 결국 나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이다. 테이블 위의 떡볶이로 시선을 고정했다. 말을 주고받을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예의지만,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았다.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또다시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상대방의 청취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 대화는 핑퐁이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드는 건 즐겁다. 타인이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더욱 신이 난다. 전 세계가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열광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학생 때 100문 100답 등을 싸이월드에 올리던 것도 비슷한 심리다. 


SNS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내 이야기를 떠들 수 있는 공간이다. 소위 말하는 TMI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으니 끊임없이 갈구하던 자기표현 욕구가 충족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럴 수록 점점 사람과의 대화는 서툴러지고 내 이야기만 하는 짧은 화법에만 익숙해진다.


당연히 나도 관심을 좋아한다. 길을 잃었지만 혼자 씩씩하게 집을 찾아온 4살 때의 명석함이나, 반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중학교 졸업식 때의 인기를 자랑하자면 하루 24시간도 부족하다. 도쿄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겪었던 동일본 대지진 이야기는 3일 정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건 ‘나’이기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수 백 번씩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반면 장황하게 나의 히스토리를 읊는다면 15년 지기 친구에게조차 카톡에서 ‘읽씹’당하기 일쑤일 것이다.


하루 종일 친구와 수다를 떤 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그 말은 괜히 했나?’ 걱정하는 순간이 있다. 결국 우리는 알고 있다. 내 말만 하면 상대와 제대로 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 기분에 취해 혼자 떠든 건 아닌지 뒤늦게 걱정하는 것이다.








당신과 대화하는 그 사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 필요에 대해 관심이 많다.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천재지변보다 자신의 치통이 더욱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40여 차례나 발생한 심각한 지진 역시 자신의 목에 난 종기보다 더 대단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

-데일 카네기-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왔을 때 내가 쓰는 백전백승 방법이 있다. ‘잘 듣고 물어보기’이다. 비록 그가 군대 시절 얼마나 힘든 경험을 했는지, 직장 축구 동호회의 주말 아침 연습이 얼마나 보람찬지 이야기할지라도 말이다. 잘 들어주고 궁금해하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방인의 사랑>의 저자 잭 우드포드는 이렇게 썼다.

“열중해서 들어주는 행위에 내포된 은근한 아첨을 거부할 자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 이야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감정을 느낄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어떤 말을 꺼내도 “나는”으로 귀결되는 화법을 지닌 친구와는 점차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로 여겨졌다. 연락은 서서히 줄었고,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말만 주고받는 사이로 전락했다.


누구나 자기표현 욕구가 있다. 그럴수록 더욱 말을 아끼고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상대방의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좀 더 유쾌하고 충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남들에게 ‘대화하고 싶은 상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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