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인생은 긴 걸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저 쪽인데......”
흐리는 말끝이 기가 잔뜩 죽었다. 카펫에 우유를 쏟고 혼날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 같았다.
갈비탕이 먹고 싶다는 느닷없는 내 말에 오랜만에 외식하러 나간 참이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모르는 길이 많았지만 내비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차로 20분 거리의 갈비탕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10시 방향 우회전입니다.” 5차로에서 핸들을 꺾었지만, 내비가 지시한 길의 옆 골목이었다. 운전경력 12년 차인 엄마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늦잠 자서 지각 위기에 놓인 출근길도, 선착순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 한정판 운동화를 사러 가는 길도 아니다. 그저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두툼한 갈빗살과 뜨끈하고 개운한 맑은 국물로 배를 채우러 갈 뿐이었다. 친절한 목소리로 연신 길을 안내하던 내비는 다른 길로 들어서자 띠딩, 하고 조화되지 않는 소리를 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다정한 기계음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삶도 비슷하다. 10대에는 입시,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과 내 집 마련.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의심 없이 따라가는 초행길 운전처럼 사회적으로 정해진 암묵적 단계를 따른다.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소위 말하는 루저, 패배자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모두가 ‘남들 하는 만큼’은 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할 틈 없이 살아간다.
생각은커녕 헉헉거리는 숨을 진정시킬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아등바등 헐레벌떡 사회적으로 결정된 기한에 맞추려 애쓴다.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 보는 학생을 부적응자 취급하고, 대학 졸업 후 꿈을 찾는 이들을 ‘철없는 어른’으로 치부하며 하루빨리 번듯한 직장을 가지도록 종용한다. 그 물살 속에서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조직보다는 나의 시간과 행복이 우선인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몇 년 전부터 떠들썩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일하는 법’을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두룩한 문서가 나올 정도다. 사회는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방식과 활력을 불어넣어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들이대는 건 구시대의 잣대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개인보다는 조직, 회사, 국가의 성공을 우선하던 시대는 끝났다.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이루던 헝그리 정신의 경제성장 시기는 부모님 세대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그때의 생활습관과 행동양식의 답습을 멈추고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볼 때다.
몇 년 전 교육 관련 부서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직업 체험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각종 동아리 활동의 경제적 지원은 물론 그 분야의 프로나 전문 강사와의 네트워크까지 형성해 주었다. 단순히 소방관 옷을 입고 불을 꺼보는 체험이 아닌, 소방관이 되기 위한 실질적 방법, 실제 소방관의 생활 및 임무를 배우고, 지속적 경험과 학습을 한다. 뜬구름 잡는 말보다는 구체적 지도를 전해준다. 아이들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
그중 하나가 뮤지컬 동아리였다. 이 동아리에 유독 눈길이 갔다.
2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 나는 뮤지컬에 푹 빠졌다. 관객으로서 즐기던 것이 어느새 ‘해보고 싶다’로 발전했다. 연기보다는 연출, 극본 쪽이었다. 제한된 공간과 짧은 시간 속에서도 관객들의 감정을 움켜쥐고 흔드는 힘에 매료되었다. 드라마처럼 강조하고 싶은 인물, 사물을 클로즈업하거나 원하는 배경을 위해 멀고 먼 촬영지로 떠날 수도 없다. 정해진 무대 위에서 시대, 상황, 분위기, 시점을 모두 표현해내야 한다. 극적인 장면의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은 온몸을 찌릿하게 하는 맛이 있었다. 배우들의 땀방울이 만드는 라이브 무대는 같은 공연도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매일 새롭게 창조하는 예술이었다.
흘러가는 대로 반복된 일상을 살던 직장인의 가슴이 설렜다. 뮤지컬 작가나 연출을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근 30여 년 동안 굳은 머릿속 생각들이 극구 반대했다. ‘이 나이에 뭘 배워? 회사 때려치우고 뮤지컬 작가라도 되려고?’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 때는 이만한 지원이 없었다. 있었다고 한들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흥미를 발견했으니까.
그렇다면 성인이 된 후의 꿈이나 바람은 이미 늦은 것일까? 영원히 가슴에만 간직해야 하는 아련한 ‘꿈’일까? 10대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하면 평생 단념해야 하는 걸까?
한국인 평균수명은 83.3세,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31세이다. 대부분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시점에서 남은 50년의 삶이 결정된다. 취업 준비 기간을 따지면 결정의 시간은 더욱 앞당겨진다. 깊은 성찰과 고민이 부족한 채 사회적 시계에 맞춘 결정으로 남은 50여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PT 트레이너 선생님과 새해 계획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새해에는 이것저것 배우고 자격증도 따 보려고요. 어릴 때부터 너무 운동만 해서, 그 작은 세계에만 있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분명 운동을 좋아하고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 경험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걸 언제 해,’, ‘그냥 일이나 하자.’. ‘이 나이에 뭘.’이라는 말들을 밀어내고 ‘새해’를 발판 삼아 용기를 냈다. 직업을 바꾼다거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을 실천해보기로 한 것이다.
30대 중반이 된 올해,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삶이 고단할 때, 가끔은 외롭고 싶을 때,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전환한다거나 공모전에 나가 상을 받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내비가 안내하는 길 옆 작은 골목으로 일부러 방향을 살짝 틀어보는 것이다. 그 길에서 몰랐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다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그 날 엄마가 들어간 골목에서 사람이 가득한 칼국수 집을 만났다. 내비의 안내대로 갈비탕 집만 향해 갔다면, 먹음직스러운 김치가 한가득 올라간 얼큰한 김치 칼국수의 맛을 꽤 오래, 어쩌면 영영 몰랐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