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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13. 2021

피 좀 나눠주실 수 있나요?

많이 부족하다고 하네요.

 


#드라큘라도 안 먹고 갈 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헌혈을 한 적이 없다. 친구들이 헌혈차에 가서 누워있을 때 밖에서 멀뚱히 기다리기만 했다. 헌혈을 하고 가라는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헌혈증 기부로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에도 동참한 적이 없다. 


평범한 이유다. 빈혈이 있다. 여자들에게 가벼운 빈혈은 흔한 증상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쇠 맛 나는 액체 철분제를 매일 꿀떡꿀떡 삼켰다. 주기적으로 향한 병원에서는 큰 차도는 없었다.


특별히 사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숨이 가빠오는 어지럼증도 잠시 휴식을 취하면 나아졌다. 


어릴 땐 헌혈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헌혈하러 가도 내 피는 받아주질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 덤으로 받아오는 빵이나 간식을 한 입 얻어먹을 뿐이었다.


나는 드라큘라도 안 먹고 갈 영양가 없는 피를 가진 것이다.

그런 내가 얼마 전, 헌혈센터를 찾아갔다.






#헌혈과는 다른 조혈모세포 기증?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 HSC)

모든 종류의 혈액세포를 생성하는 줄기세포이다. 피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란 뜻으로 이 세포가 자라고 증식하여 혈액 내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각종 면역세포를 만든다.

-백과사전-


 

“저, 헌혈 말고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하러 왔는데요.”


스스로 처음 찾아온 헌혈의 집. 어색함에 목소리가 한껏 작아졌다. 쭈뼛거리며 입에 붙지 않는 단어를 내뱉었다.


‘조혈모세포’라는 말은 최근에 언니가 기증을 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어서 처음 알았다.  2년 전 회사 앞에서 신청을 받기에 퇴근길에 별생각 없이 등록을 하고 왔는데, 얼마 전 기증 요청이 온 것이다. 본격적인 검사 결과, 얼굴도 모르는 환자와 언니의 조혈모세포가 100% 일치한다는 경이로운 숫자가 나왔다고 한다.



조혈모세포는 피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타인에게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한다. 혈액형은 달라도 괜찮지만, 유전형질이 일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 유전형질이 부모 자식 간에도 일치 확률이 5% 미만이라는 것이다. 형제간에도 25%라고 하니 희망적이지는 않다.


결국 생판 모르는 타인의 기증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기증받기 위해 10년, 15년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 기증자를 찾지 못해 치료가 늦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언니가 환자와 100% 일치한 것은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환자 쪽에서는 기증자의 마음이 바뀔까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마음이 확고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애가 타겠어. 얼마든지 해줘야지.”


집안 내력인지 언니 역시 가벼운 빈혈이 있다. 그럼에도 조혈모세포 기증이 가능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헌혈의 집에 스스로 찾아간 이유였다.






#헌혈 말고, 조혈모세포 기증만 하신다고요?


당황스러운 기색이 선생님의 얼굴에 드러났다. 

‘헌혈 말고 조혈모세포 기증만’이라니, 애매하게 야박한 인심의 상대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빈혈이 있어서...... 그동안 계속 퇴짜 맞았거든요. 조혈모세포 기증은 된다고 해서......”


떠뜸떠뜸 황급히 이유를 덧붙였다. 사실인데 변명을 하는듯한 기분이다.


"네, 우선 먼저 검사를 해볼게요."


따끔. 손끝에 피를 냈다. 작은 종이에 피를 두 번 묻힌다.

선생님이 내 눈치를 보는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결과가 괜찮으면 헌혈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스크와 가림막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요즘 피가 너무 부족하거든요......”






#피가 얼마나 부족하길래?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일일 혈액 보유량의 적정치는 5일분이다. 그러나 아래 그림과 같이 혈액보유량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코로나 발생 및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작년은 더욱 심각했다. 보유량이 3일분에 미치지 못해 노란불이 켜지기까지 했을 지경이었다. 현재 꾸준한 사회적 관심 촉구 및 참여로 보유량은 점차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적정 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적정 혈액보유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매일 약 5천5백 명의 추가 헌혈이 필요한 상태다.


혈액보유량이 중요한 이유는, 재난 혹은 대형사고 발생 시 심각한 혈액 수급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혈은 하고 싶은데 코로나가 걱정된다면


코로나 19 감염 우려로 쉽사리 헌혈에 마음을 보태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2020년 10월, 아래와 같은 입장 발표를 통해 헌혈의 안전성을 설파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결국 나는 빈혈 수치가 현저히 낮아 조혈모세포 기증조차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피 한 방울이 아쉬운 때에 제 발로 찾아온 헌혈자를 돌려보내는 선생님의 안타까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선 헌혈자 등록이라도 하시고, 좀 괜찮아지시면 헌혈 좀 꼭 부탁드릴게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보다 잘 먹고 다니는데, 이놈의 끈덕진 빈혈은 도저히 낫지 않는다. 타고난 고질병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방법을 고민했다. 비록 나는 피 한 방울 기증하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헌혈을 촉구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지금도 수혈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오늘 하루 헌혈의 집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코로나 19로 일선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보며 우리가 용기를 얻듯, 우리의 헌혈로 누군가가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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