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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Dec 23. 2020

내성적이라 죄송한데 제 성격이라서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





뚱뚱한 여자만 골라서 만나는 남자가 있다면 어떨까? 완결된 웹툰 [좋아하는 부분]의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의 고집스러운 취향은 다른 등장인물들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너의 그 취향은 잘못되었으니 고쳐라.” 끊임없이 강요당한 그는 자신의 취향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잘 된 취향과 잘못된 취향은 누가 정한 걸까?               


출처: 네이버 웹툰 <좋아하는 부분>




"선배가 되어서 대화도 못 이끌고."  


옆 테이블 상사의 한 마디에 회식장소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귀신을 본 것도 아닌데 등이 서늘해졌다. 그 말속에는 한심함과 안타까움이 서려있었다. ‘내 잘못이구나, 내 성격이 잘못된 거구나.’ 곧 익숙한 자기 비난으로 이어졌다.     


2주 전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부서에 왔다. 같은 때에 이제 막 입사한 신규직원 3명이 함께 들어왔다. 말하자면 나와 그들은 입사동기가 아닌 ‘입부동기’였다.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하는 그들과 마주 앉은 테이블은 어색했다. 내 안의 사회성을 긁어모아 신규직원들에게 이런저런 대화를 건네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궁금하지도 않은 개인사를 묻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대화가 길게 이어질 리는 없었다. 그 공백의 순간에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훅! 들어온 것이다. 처음부터 사근 거리지 못하는 나를 탐탁지 않게 보던 분이라 더욱 주눅이 들었다.   

  

삼십 줄을 넘고 직급이 높아져도 어색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렵다.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HP*가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다.


*Health Point. 게임에서 체력을 나타나는 수치로 다 닳으면 캐릭터가 죽는다.  


   



     

내성적인 아이들을 고쳐주고 싶어요.     


교육 관련 부서에서 ‘리더십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1박 2일 간 리더십이 뛰어난 아이들을 모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발표와 체험을 통해 지도자로 성장시키자는 취지였다. 참여한 아이들은 번쩍번쩍 손도 잘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선배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런 워크숍은 언제나 나서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들만 참여하게 되잖아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들도 이런 힘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어요.”   

   

선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건 내성적인 아이들에게 네 성격은 잘못됐으니 고치라고 하는 거밖에 더 되겠어? 잘못된 게 아니잖아. 그냥 다른 성격일 뿐이지.”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 까지 내내 활기차고 싹싹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처음 본 사람과도 말을 잘하고 직장상사의 비위도 살살 맞출 줄 아는 외향적 성격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철저하게 휩쓸렸다. 동시에 그렇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해왔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싫었다. 답답하고 바보 같았다.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압박은, 답지를 잃어버린 수학 문제처럼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그 날 선배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자신조차도.    

    


       



여전히 나는 

     

서른넷이 된 지금도 식당에서 종업원을 큰 소리로 부르기 힘들다. 요즘은 전화가 아닌 어플로 치킨을 주문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매장 직원의 끈질긴 권유에 떠밀려 산 옷은 환불할 엄두도 못 낸 채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둔다.     


그냥 내가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것뿐이다. 내성적인 성격은 잘못이 아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외모와 개성이 있듯 많은 성격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나는 내 성격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인걸. 



 

그 후 두툼한 고기가 다 익을 즈음에 신규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누가 강요한 게 아닌, 나 스스로 편안한 대화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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