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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Dec 23. 2020

상사의 칭찬이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

칭찬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마법의 주문

칭찬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마법의 주문



“다른 부서에서도 이소 씨 데려간다고 난리였어. 우리 부서로 끌어오느라 고생 좀 했지.”


1년 전 인사이동이 있던 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그릇을 밀어주며 과장님이 말했다. 뽀얀 국물과 탱글한 면발 위로 대여섯 개의 조개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주위로 가느다란 당근의 주홍과 송송 썰린 파의 초록이 단순하면서도 멋스럽게 어우러졌다. 먹음직스러운 칼국수의 뜨끈한 국물 한 숟갈 호로록 마시면 답답한 속이 탁 풀릴 줄 알았는데, 과장님이 건넨 문장이 목구멍을 꽉 막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을 기다린다. 유치원에서 얼마나 착하게 굴었는지 엄마에게 자랑하고 칭찬을 기대하는 아이 모습 같다. 5년간 회사생활에서 배운 ‘사회용 미소’를 장착하고 겸손 떠는 체했다. 부담감에서 나오는 진심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모두 데려가고 싶어 할 정도로 너는 뛰어난 인재야.’라는 칭찬으로 허술하게 포장한 말은 ‘기대하는 만큼 큰 성과를 내라’라는 압박으로만 느껴졌다. 머릿속을 휘젓는 ‘기대에 못 미칠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 마음이 복잡했다.


‘대체 왜 나를?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라서? 교육청장 상을 받아서? 사내 경진대회에서 내 아이디어가 채택돼서?’


나에게는 남보다 조금 두드러지는 경력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몇 가지 성과는 전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결코 실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타이밍과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얻은 결과다. 새로운 부서에서 무능이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칼국수의 맛도 음미하지 못한 날이었다.


이처럼 어떤 성취에서 자신의 실력을 폄하하는 현상이 ‘가면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이뤄낸 업적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 증상을 겪는 이들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으로 얻어졌다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을 ‘가면 쓴 사기꾼’으로 여기고 지금껏 주변 사람들을 속여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무능함을 들킬까 늘 불안해한다.


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건, 많은 사람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는 방증이다. 큰 업적을 남긴 유명인들도 가면 증후군의 덫에 걸렸다고 한다. 세계적 피겨 스타인 김연아 선수, 봉준호 감독부터 할리우드 배우 나탈리 포트만, 엠마 왓슨,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까지. 세계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이 대체 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대상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이 위치한 IT기업 성지인 미국 실리콘밸리 직장인들이었다. ‘당신이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우십니까?’라는 질문에 62%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가면 증후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존감 부족’이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실력과 성취의 원인을 외부 변수에서 찾는 것이다.


특히 겸손을 큰 덕목으로 여기는 동양권 문화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칭찬을 덥석 받아먹거나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면 ‘건방진’, ‘거만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나를 낮추는 것은 미덕이요, 성공의 덕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을 사려 깊음이라 여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내면의 자존감이 굳게 형성되기도 전에 고개만 숙이면 이리저리 휘청일 뿐이다. 결국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게 된다.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반복하는 이 말에 중독되고 전염되면 머릿속에서도 칭찬을 밀어낸다. 내 노력으로 세운 공도 우연과 운으로 치부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요즘 나는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으려고 노력한다. 종종 가면 쓴 녀석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칭찬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한 템포 쉬고 목구멍 안으로 삼킨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결코 건방지지 않으면서도 칭찬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마법의 주문이다.


더 나아가 자화자찬을 일삼기도 한다. 커다란 업적이나 성취가 매일같이 일어나지는 않기에, 아주 작은 일로도 호들갑을 떤다. “와, 이불 정리를 했어, 완전 기특해!”, “오늘도 지각 안 하고 출근했네. 역시 성실하다니까.” 스스로 하는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뇌가 진짜로 믿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내뿜다는 현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작가인 앤드류 매튜스는 “칭찬을 받거든 ‘감사합니다.’하고 그저 받아들여라.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제일 먼저 깨달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작은 일에도 스스로 기특해하고, 타인의 좋은 말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다 보면 어느새 가면을 벗어던진 나를 발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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