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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Dec 23. 2020

팀장에게 팀장 욕을 보냈다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 깨달은 것




 


아, X됐다. 팀장에게 욕을 보냈다. 옆 동료에게 보낸다는 것이, 바로 위 다른 이름을 누른 것이다. 하필 팀장이었다. 발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신인: 최OO]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식은땀이 났다. 쌓여있는 일을 내팽개치고 뛰쳐나갈 뻔했다. 가능하면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다.


친절한 메신저는 [최OO 님이 쪽지를 확인하였습니다.]라고 알렸다. 쾅쾅쾅. 팀장이 내가 보낸 욕을 확인했다는 판결이 난 것이다. 일은 늘 팀원들에게 떠넘기고 두세 시간씩 자리 비우기 일쑤면서, 이럴 땐 꼭 자리에 앉아있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팀장이 더더욱 원망스럽다.


날 호출하겠지? 초조하고 불안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면 어쩌지.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면 어떡하지? 팀장이 이런 되먹지 못한 팀원과는 더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쩌지? 오늘따라 지독하게 고요한 사무실에서 내 속만 전쟁통이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지금은 연이 끊긴 한 언니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는 늘 사소한 것에 불만을 품어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언니 친구를 ‘어이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었다. 요점은 몇 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근황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이야기 한 점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면 반가움과 설렘으로 그간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나눈다. 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상황 때문에 자신이 욕을 먹었단 사실을 친구는 평생 알지 못하겠지. 신발 속에 돌멩이가 들어간 기분이었다. 다음에는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편함이었다.


나에게 남의 욕을 하는 사람은 남에게 나의 욕도 하지 않을까?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결국 나 또한 동료에게 팀장 욕을 하려 한 것이었다. 만약 내 쪽지가 동료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동료도 비슷한 생각을 품지 않았을까?





험담은 세 명을 해친다.
험담을 하는 장본인과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누군가를 흉보는 행위는 묘한 즐거움을 준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더 친해진 기분도 든다. “걔가 그랬대~”부터 시작하는 말은 대화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카톡으로 직행하는 일도 다반사다. 회사에서는 상사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직원 간 결속을 다지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을 깎아내리며 얻는 일시적인 재미와 흥분은 나의 신뢰와 맞바꾼 대가다. 은밀한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불특정 다수의 술안주가 되어 마른오징어와 함께 질겅질겅 씹히는 결말이 빤하니까.


뻔히 알면서도 자꾸 실수를 되풀이하는 나를 제대로 발견한 날이다. 남이 휘두르는 칼을 내가 어찌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칼을 뽑아 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팀장님은 그날도 다음 날도 호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나를 찌른 칼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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