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으면 그 시절의 감정을 끼얹어 주네요.
노래에는 시간이 새겨진다. 글이 당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면, 음악은 그때의 감정을 고요히 담아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노래를 들을 때, 보관하던 감정을 내 온몸에 끼얹어준다.
나의 경우, god의 ‘거짓말’을 들으면 친구와 잡지 한 권 펼쳐 놓고 우리 오빠 너네 오빠 나온 페이지를 잘라 나눠 가지던 중학생 시절이 재생된다. 또,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주겠죠’라는 가사가 담긴 팀의 ‘사랑합니다’는 첫사랑에게 고백도 못하고 끙끙 앓던 아련하고 어린 고등학생 때의 감정을 불러들여준다. 유학 시절 자주 듣던 Aqua Times의 千の夜をこえて 는 들을 때마다 나를 2008년의 일본으로 데려가 준다. 지금은 생일 때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친구 노리키와 늘 붙어 다니던 시절이다. 때로는 너무나도 즐거웠던 시절이 가슴 절절하게 사무쳐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재생 버튼과 함께 나를 덮치는 감정들이 전부 아련하고 애틋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작년의 나는 노래에 아픈 감정을 담고 말았다. 아프고 처절하고 외롭고 서러웠던 덩어리가 그 노래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좋아하는 노래임에도 들을 수 없었다. 의도치 않게 머릿속에서라도 재생되는 날에는 이어폰을 끼고 다른 노래를 주입시켰다. 애써 피하고 외면하고 모른척했다.
그까짓 노래 안 들으면 어때? 다른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에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남았다.
나는 어쩌면, 그 감정들을 아직도 잔뜩 끌어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우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상황에서, 혼자 멀뚱히 서있었다.
문득 그냥, 틀어보기로 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지워버리기 전에 들어보자. 역시나 가슴을 후벼 파는 그 노래가 야속했다. 이 노래는 나에게 지워질 수밖에 없을까.
자꾸 들어보기로 했다. 열 번 듣고 계속 듣다 보면 조금은 무뎌지고, 그 옆에 지금의 기분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노래에 묻은 과거를 닦을 순 없겠지만, 새로운 지금을 더 새길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나란히 새겨져 있다면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냥 아프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