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소 Mar 29. 2021

당신의 아픈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기를

그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당신에게

 출근길에는 늘 유튜브를 듣는다. 운전을 하며 소리만 듣기에 듣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주로 기운을 나게 하는 동기부여 강연이다. 


 그간 나의 클릭 데이터를 모아 온 알고리즘이 내 마음에 쏙 드는 영상들을 목록에 채워 넣고 있었다. 개중에는 ‘마음이 아플 때’라는 제목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영상을 눌렀다. 이상했다. 1년 전의 나라면 이해가 되지만, 제법 무뎌진 지금의 나는 별로 끌리지 않을 제목이었다. 영상 속 목소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퇴근길에는 신나는 노래를 틀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진이라는 동기 오빠가 저녁이나 먹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모임에는 한이라는 동기 오빠도 포함되었다.


 셋이서 6인분이나 해치운 후 우리는 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카페에 들어섰다. 진 오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자몽에이드, 히비스커스 차가 올려진 트레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세 달 전 자신의 이별 이야기를 슬쩍 꺼내보였다. 무덤덤하고 느릿한 말투는, 뜨거운 사랑이 차갑게 녹아버린 순간의 상황과 생각을 하나씩 꺼내놓고 있었다. 


 정제되어서 나왔을 그 말들이 머리와 가슴속에서는 휘몰아치는 태풍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테지. 텅 빈 공허함 속에 가득 채워져 있을 괴로움. 그것은 아마도 슬픔, 외로움, 분노, 후회, 원망, 애절함의 덩어리가 뭉쳐있는 모양새일 것이다. 살을 찢는 추위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 피할 수 있는데, 마음속의 얼음장은 아무리 몸을 움직이고 피하려 해도 내 안에 가득 채워져서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진 오빠가 겪고 있는 경험과 고통은, 나의 그것과 장르도 결도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그리고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근본적으로 비슷한 아픔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더더욱 알고 있었다. 지금 나의 그 어떤 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변의 어떤 위로도 아주 일시적인 해소일뿐 완벽한 해방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오빠도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 잠깐의 위로의 약이라도 필요했을 오빠의 벼랑 끝에 선 마음이 훅 불어 들어와서 나까지 쓸쓸해졌다. 부디 오빠의 '지금'이 빨리 흘러가버리길.



매거진의 이전글 A형 같은 A형, A형 같지 않은 A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