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주일을 맞아 예배를 다녀왔다. 오늘 설교 말씀의 주제가 만남이었다. 나는 평소에 누구를 만나며 어떤 영향을 받고 사는걸까? 세상 평범한 나같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의 욕구를 정확히 알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장을 실천하려고, 나를 돌아보고, 강연과 책을 통해 나의 삶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정말 놀라우신 분들이 많다. 글을 쓰시는 분들, 자기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해서 나눠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또 자극을 받는다.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듣는다. 그만큼 사람 자체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은 것이다.
이무석 교수님의 ‘30년만의 휴식’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이 고픈 것이다. 어릴 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더 많이 가지려고, 더 갈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육아를 하는 시기에 보통 엄마들은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른채 화를 내게 된다.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오도가도 못하게 막는 방해물처럼 느껴질때가 있었다. 큰아이를 처음 낳고 나서였다. 오로지 나에게만 기대어 모든걸 해결하는 아이가, 이쁘기 보다는 나의 발목을 붙잡는 방해물같이 느껴지던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혔던 기억.
현대인들은 다들 정말 열심히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피땀어린 노력을 한다. 이것이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갈구 하기 위한것이었다니 아이러니 하다. 보통은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이가 둘이 되니 이 엄마의 사랑을 둘로 나누어 줘야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무 자르듯이 딱 반으로 잘라지는게 아니다 보니,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한다. 이것이 어릴 때는 모르다가, 커서 다른 형태의 결핍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항상 피곤에 지치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 아이들에게 남을 이기려면 지금 달려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 내 모습을 반성해 본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때 울었어야 할 때, 사랑받는 아이가 되기 위해 울지 못한 아이들이, 그 마음속에 어릴 때의 울음을 잠재워 놓았다가, 성인이 되어서, 터트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그 나이 때에 꼭 필요한 사랑, 인정 이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울지 못할 정도의 공포를 느끼거나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평균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출산율이 그걸 말해준다. 한명도 낳을까 말까한 아이들의 울음을 듣고도 그냥 스치는 부모는 많이 없다. 그 옛날 농경시대에 먹고살기 바빴던 성장이 있는 시대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로 생각된다. 조금 있으면 베이비 부머 세대 1971년생의 이제 은퇴를 할 시기가 다가온다.
나는 나의 아이들 보다 나의 남편이 더 걱정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쨌든 소수에 속하는 무리이고, 성장의 시대에 살던 부모를 만나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울음을 시기에 맞게 적절히 흘리며 살았다.
나의 남편 40대 중후반의 남편들이 이제 직업전선을 떠나야 할 때 그 때가 나는 더 걱정된다. 대한민국에서 직업이 직장이 없다는 그 허탈감을 견딜수 있을만큼의 단단한 마음이 있을까 걱정되서이다. 40대 중후반의 그들이 살던 어린시절이 베이비 부머 세대라고 할만큼 사람이 많았기에,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이 없는 시절을 보낸 것이다. 이 사람들이 직업전선이라는 전투장에서 물러났을 때, 그 인정의 욕구와 사랑의 욕구를 잘 달래주어야 남은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