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맛있었을.
런던을 떠나기 전 날 저녁, 나는 마드리드에서 사, 거진 한 달을 들고 다녔던, 아끼고 아낀 마지막 한국 라면을 끓여먹었다. 물의 양을 제대로 맞추지못해 냄비 안에 물이 한강이였지만, 살면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외로워졌다.
4년 전,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일을 시작했다. 백화점 식당층, 그러니까 문화센터의 아래층 카페였다.
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일했었던, 모두가 쉽게 떠올리는 그런 평범한 카페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서서 허리숙여 손님을 맞아야 했다. 일단 물을 서빙하고, 부르면 달려가 주문을 받았다. 다시 음료를 서빙하고, 때 마다 테이블을 치우고 닦아야했다. 손님도 웨이팅이 있을 만큼 많았다. 위치의 특성상, 있는 사람들이 더 한 건지 이렇게 살아서 있는 사람이 된 건지 모를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사람도 역겨웠고, 일도 지독했다.
처음 일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든 다음날 아침엔 눈을 뜨니 천장이 팽글팽글 돌았다. 술을 일절 하지 않는 나는 이런 게 만취한 느낌인가 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일어나기가 힘들어 토악질이 나왔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때까지도 일이 익숙해지지 않아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11시가 다 된 어느 날 밤의 퇴근길에, 안 먹던 야식을 먹어야겠길래 라면 하나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인스턴트를 병적으로 싫어하셨고 집에는 라면이나 즉석식품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나도 그다지 라면을 좋아하진 않았다.
엄마는 라면은 안 좋은 음식이니 싱겁게라도 먹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갖고 계셨다. 내가 생각하기론 라면은, 짜야 제 맛인데.
"이 밤에 무슨 라면이야?"
"절대! 절대 라면 끓이지 마! 내가 끓일 거야!"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는 '내가 네 라면을 왜 끓여주냐'며 받아쳤지만,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라면이 다 끓은 뒤였다. 우리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물론, 라면의 면발은 깊은 수심 아래 아득히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끓인다고 했잖아!"
양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라고 짜증이 몰려와 눈물까지 터져 나왔다.
엄마는 '안 싱겁게 끓였다. 김치랑 같이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큰소리쳤지만 펑펑 우는 나를 보며 이내 '엄마가 새로 하나 사 올까?'라고 작게 물어보셨다. 안 먹는다고 빽 고함을 지르고 방으로 들어와 문밖에서 들려오는 달그락달그락, 엄마의 설거지 소리를 들으며 계속 울었다.
나는 라면이 먹고 싶었던 걸까, 내 하루의 짜증을 받아낼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엄마는 막내딸에게 화가 나셨을까, 가여우셨을까. 아니면, 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미안하셨을까.
고작 4년이 흘렀지만, 이제는 엄마의 매일매일이 그때의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겹게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 무슨 마음으로 딸을 기다리다, 무슨 마음으로 딸에게 라면을 끓여주었을지 감히 짐작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죄스러움이 몰아친다.
모녀 중 누구도 그 날의 기억을 입으로 옮긴 적은 없으나, 서로에게 다른 모양의 상처로 남아있음을 안다.
나는 아직도 라면이 참 외롭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