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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17. 2017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이 생의 마지막 루사카.


잠비아 루사카에 도착해 한참을 걷다, 고르고 골라 어렵게 결정 난 숙소의 장점은 오직 하룻밤 7000원이라는 가격뿐이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쾌쾌한 냄새가 났고, 침구류엔 곰팡이가, 벽에는 거미줄이 있었다. 배드버그가 있을 것이란 확신에 굳이 침대는 들추지도 않았다. 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프리카 땅에서 도미토리 방을 내어준다는 것 자체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아프리카 숙소는 캠핑카를 이용한 트럭킹 관광객들을 위한 곳이 대부분이라, 배낭여행객에겐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 숙소는 짐바브웨나 보츠와나 같은 주변국, 혹은 수도 루사카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업무로 올라온 현지인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였으니 치안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위치도 음산했다. 숙소 내부에 외국인은 순덕언니부부와, 진우, 그리고 나, 즉 우리 네 사람뿐이었다.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는 호스텔의 하나뿐인 입구 앞 도미토리는 문을 잠글 수도 없었다. 때문에 도통 믿음이 가지 않아, 함께 루사카로 온 순덕언니와 상윤오빠부부의 개인룸에 중요한 짐을 놓고 다녔다. 사실 아프리카의 숙소에 자주 도둑이 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도둑의 8할이 직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까지의 안전함이 만들어낸 안일함이었는지 모른다.


때는 저녁 7시 즈음이었다.

우리는 숙소 앞 좁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1인분에 3000원이 되지 않는 삼겹살을 사 와서 배부르게 먹고 축제가 있는 멀리 시내에서 터지는 폭죽을 보며, 선선한 날씨에 술과 수다가 더해져 완벽한 시간이었다. 방을 비운 건, 대략 한 시간 남짓이었던 샘이다.


저녁 준비를 하며 방에서 젓가락과 고추장 등 필요한 음식을 빼간 이후 문을 잠가뒀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낸 우리는 순덕언니의 방에 둔 짐을 찾아가기 위해 잠긴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깨끗했고 충전 중이던 내 핸드폰과 구석에 놔둔 내 가방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하고 노트북이 들어있어야 할 내 가방을 들어 올렸는데, 맥없이 딸려온다. 가방은 텅 비어있었다.

늘 오빠가 쓰던 것을 받아썼었는데, 처음으로 새 것으로 내 것이 된 노트북이었다. 여행을 가겠다는 딸을 위해 아빠가 사주신 노트북이었다. 딸의 물건을 한 번도 직접 골라본 적이 없는 아빠가 딸이라고 골라온 분홍색 파우치에 담긴 나의 새 노트북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쓴 일기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나와 동시에 자신의 가방을 열어보시던 순덕언니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카메라, 노트북, 현금 다 없어졌네요."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방 문은 잠겨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방을 털어간 사람은 열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낮 시간도 내내 같은 상태로 방을 비워두었었다. 그런데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고, 굳이 마당에서 우리가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순간을 노렸다. 한동안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그 방을 쓰는 줄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충전 중이던 내 휴대폰은 훔쳐가지 않았다. 우리가 작은 가방을 들고 그 방을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 애초에 가방만을 노렸을 것이다. 호스텔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우리가 고기를 구워 먹던 마당 옆 대문뿐이었다. 우리가 마당에 있는 동안 호스텔을 들어오거나 나간 사람이 없었으니 호스텔 안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대문이 아닌 쪽문도 하나 있지만, 그곳은 호스텔 직원들만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다. 심증은 확실하니, 물증을 찾아야 했다.


"우리 방에 도둑이 들었고, 우리는 전부 잃어버렸어."


이 말을 들은 호스텔 직원은 부엌에서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퀴퀴한 생선을 튀기며 "그래? 잘 찾아봐."라고 대답했다. 시선은 프라이팬에 고정시킨 채로.


"스페어 키를 가진 사람이 범인이야. 문은 다시 잠겨있었거든. 스페어 키 누구한테 있어?"


진우가 이렇게 묻자, 직원은 호스텔에 마스터키나 스페어 키는 절대로 없고, 순덕언니가 가진 열쇠 하나가 전부라고 했다.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마. 경찰과 너희 사장을 불러줘! 그리고 우리는 지금부터 호스텔을 뒤질거야!"

진우가 소리쳤다.

직원들은 그제야 우리를 보았지만 "경찰을 부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심카드가 없었기에 경찰을 부를 방도가 없었다. 결국 진우는 어두운 아프리카의 밤길을 걸어 혼자서 경찰서로 향했고, 우리 세 사람은 그간 호스텔 구석구석을 뒤졌다.




경찰이 오자 직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온몸을 부르르-떨었다.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가있었으며 덥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땀을 닦아 냈다.


아프리카는 범죄자의 인권이 낮고, 공권력이 세서, 현장에서 잡힌 범죄자들은 옷을 벗기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실제로 다음 날 찾아간 경찰서에서 속옷만 걸친 범죄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사복을 입은 경찰에게 맞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장담컨데, 이 도난사건이 분명히 처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숱한 관광객들이 숱한 호스텔에서 숱한 도둑질을 당했을 것이다. 경찰도 처음엔 호스텔 직원을 나무라는 듯했으나, 증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 이후로는 말도 안 되는 괘변을 늘어놓으며 사건을 종결시켜버렸다.


"너희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물건을 돌려줘. 그렇게 살지 말라고!"

직원의 면전에 큰소리로 악을 썼지만 그들은 해명은커녕 쳐다보지 못하고 손만 떨었다.





아침이 되고 눈을 뜨자마자 경찰서를 찾았다. 보험사에 제출할 경찰리포트를 받기 위함이었는데 어젯밤 숙소로 와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경찰은 퇴근을 하고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다시 설명하고, 함께 숙소로 가서 현장을 보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오는데 오전 나절을 전부 사용해버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자 거의 점심때가 다 되었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넘겨지며 똑같은 상황을 다섯 번 이상은 말하게 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뚱한 표정으로 불 멘 소리를 주야장천 늘어놓는 나를 그들은 안쪽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 안 구석에 앉은 남자는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좋아. 리포트를 써줄게. 14일 뒤에 찾으러와!"


맙소사. 14일이라니.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우리는 내일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해. 당장 써줘."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이 빌어먹을 도시에 단 하루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루사카는,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도시라고!


그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볼펜 하나를 들고 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 어지럽게 쌓인 서류 한 귀퉁이에 '500'이라고 숫자를 썼다.


"이 돈을 주면, 내일까지 써 줄 수 있지."


어제까지만 해도 잡고 있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이런 씨발! 야! 도둑은 내 노트북 가져가고! 너네는 돈 가져가고! 창조경제다! 창조경제!"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차피 대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았고, 내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더 이상 번역 필터라던지, 비속어 필터를 거칠 수 없었다.


"What did she said?"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진우에게 물었다. 주변에선 더러 키득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패배했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었고, 우리는 오후에 시내 한복판에서 만나 밀거래를 하듯 400콰차(당시 환율 50000원 정도의 돈으로, 처음 500콰차에서 100콰차를 깎았다.)와 경찰리포트를 교환했다.


놀랍도록 파랗고 눈부시게 붉었던 잠비아의 거리를, 나는 증오했다.


나는 아프리카를 사랑했지만, '루사카에는 다신 오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 후, 내가 사랑했던 잠비아의 거리를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여행을 하며 누구나 예상지 못한 일들을 숱하게 겪게 된다. 여행이 삶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과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삶처럼 여행도,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 


주변의 모든 이가 내 편보단 적에 가까운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외진 곳에서, 사건을 대처해 나간다는 게 쉽지 않다. 나를 내가 책임져야 하니, 어떤 상황도 대강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절망적이고, 짜증이 나던 이런 많은 날들이 모여 나를 여러 방면으로 성장시킨 것도 사실이다. 여행은 나에게 꽤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붉은 꽃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법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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