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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07. 2017

시큼한 수박 한 조각

여행이 내게 남긴 것


나는 잔지바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능귀가 예쁘다더라, 잔지바르가 천국이더라.’ 정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수준이었다. 막상 와서 보니 물가도 특출나게 싼 편이 아니었을뿐더러 시내에서 가까운 바다는, 항구여서 예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생강이 싫은 나에게 늘 생강 맛이 나는 커피나 음료를 권하는 것까지 합쳐지자, 잔지바르에 대해 끌어 오르는 애정같은 건 사실 그다지 없었다.


귀가 얇고 남의 이야기에 잘 수긍하는 편인 나는, 함께 잔지바르로 온 순덕언니의 “파제가 좋다던데.”한마디에, 파제행을 결심했다. 스톤타운에서 우리는 함께 지내고 있었다.

잔지바르 섬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 서두른다면 어디든 당일치기가 가능했지만, 예쁘고 좋다던 파제에서 하루 내지 이틀을 자고 다시 돌아오고자 했다. 큰 배낭은 순덕언니 부부에게 맡겨둔 뒤 간단한 짐만 챙겨 진우와 길을 나섰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태우고 마을을 오가는 봉고차 버스(달라달라)가 아닌, 천장에 짐을 실어 나르는 짐 버스에 우리는 나란히 올라탔다. 

좌우가 뻥-뚫린 버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한참을 달렸고 아침에 감은 머리가 떡이 질 때쯤, 파제에 도착했다.


내리면서도 여기가 파제가 맞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휑한 파제의 모습에 기운이 빠졌다.

비수기엔 물이 나가 수영을 하기 힘들고, 그래서인지 관광객 자체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박비는 흥정 시도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적당한 가격으로 가성비가 좋아 배낭여행자 사이에 유명하다던 숙소도 작년에 문을 닫았다고 하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금도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우선 바닷가에서 꽤 떨어진 식당으로 가서 현지인들이 먹는 빵 한쪽과 샐러드를 시켰다. 

포크가 있었지만, 모래바람 탓에 손톱 밑 때가 가득한 내 손보다 더러워, 별 수 없이 손으로 집어먹는 것으로 허기를 달랬다. 파리가 들끓는 그 식당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바나나 두 개를 구매한 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회의했다.


숙소비를 감당해 내기에 아직 내 여행에 너무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다. 

창문없는 반지하 1인실숙소가 하룻밤 이만원이었다. 사실 가격만 놓고 보았을 땐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곰팡이가 피고 묵은 냄새가 나는 방의 상태나 천원이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아프리카의 물가로 봤을 땐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보다 더 싼 방은 없다며 방을 비워놓을 망정, 깎아주진 않겠다는 태세였다.



결국 혹시나 하고 챙겨 온 텐트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나마 조금 구석지고, 그러면서 그나마 조금 안전해 보이는 곳을 어렵사리 골라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너희 여기에 텐트치려고? 위험할텐데, 우리 집 뒷마당에 치는 건 어때?”


“너가 더 위험해 보여.” 나는 한국말로 작게 속삭였다.


망설이는 우리에게 일단 한 번 와서 공간을 확인해보라며 그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아벨리는 서너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건물의 주인이자 건축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벨리의 방은 2평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마당이 불편하면 방 한쪽에 텐트를 치고 자도 괜찮다며 방바닥에 널브러진 물건 들을 발로 대충 쓸어냈다.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매일같이 정전이 일어나는 잔지바르라 그런지 방안에는 냉장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잘라서 먹다가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이 책장 맨 위에 덩그러니 남겨놓은 수박에는 파리들이 열을 맞춰 앉아있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그 수박을 잘라 권했다.

 

마음이 선하고 고마워 거절하지 못하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수박향도, 달콤함도 없는 시큼함이 입속을 가득 채웠다. 상했다고 직접 말하기 미안해 함께 먹자며 그에게도 한쪽을 권했는데 너무 맛있게 먹는 아벨리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수박을 꼭꼭 씹어 삼켜내야했다.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해? 여기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더라.” 


그렇게 묻자 아벨리가 혼자서 영어공부를 했다며 영어사전을 들어 보였다. 

수많은 책과 인강, 학원 등을 전전하면서도 늘지 않던 영어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항상 환경을 탓해오던 나는 부끄러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가 불편하지 않게, 우리는 마다에서 자겠다고 하자 곧바로 상자를 구해와 마당의 흙바닥을 텐트의 크기만큼 평평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의 집 마당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비록 물이 나오지 않지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며, 물이 필요할 때 말해달라던 아벨리의 호의에 우리는 갖고 있던 생수와 물티슈로 대충 잘 채비를 끝냈다.


그 날 우리의 숙소는, 마당을 둘러싼 담장때문에 안전하기도 했지만, 밤 새 바람 한 점도 용납하지 않은 탓에 극심한 더위도 동반됐다.


부채질로 밤을 꼴딱 새우고, 해가 뜨자 급히 텐트를 정리한 후 우리는 과일가게로 향했다. 

머지않아 또 상해버릴테지만 싱싱한 수박 한통을 선물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나자 휑했던 미운 파제도 아름다워보였다. 


여행을 하며 느낀 것은 늘어놓다간 목이 갈라질 만큼이나 많다.

게 중 하나. 베풀고, 나누는 것은 삶의 형태나 내가 가진 것의 정도와 관련이 없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역시나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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