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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08. 2017

내가 사랑한 에펠탑의 공포

프랑스의 혁명기념일, 그리고 테러.

나는 여행 중 세 번이나 파리를 방문했다.


실내, 대낮. 그러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노상방뇨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영어로 말을 걸어도 고개를 저으며 프랑스어로 대답을 해줄 만큼 사람들은 영어를 못했다. 거기에 동양인의 얼굴을 한 나를 유독 무시하며 비웃었기까지 했던 이 파리를 내가 사랑한 이유는, 에펠탑 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시민혁명으로 일궈낸 역사답게 시민의 권력이 대단했다.

촛불 켜다 물대포를 맞는 게 아니라, 경찰에게 보호받으며 창문 깨고, 불 지르는 시위를 하는:무슨 상황에도 경찰이 본분을 잃지 않는 나라였으며, 그래서 경찰이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는 곳이었다.

그 점이 좋았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렇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의 모습은, 단연 파리의 에펠탑이었다.

제까짓 고철덩어리, 뭐 특별할 게 있냐만은 에펠탑은 분명 그 도시를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다고 확신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에 파리에 있었다.

매 해 그 날이면 에펠탑에서 불꽃축제가 열렸고, 나는 그것을 보기 위해 일부러 네덜란드에서 금방 돌아왔다.

역시나 프랑스 국민들 외에도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잔뜩 모였다.


내가 에펠탑 근처에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면에서 보기에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측면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즘 들어 프랑스에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던 터라 경찰도 많았고 경계도 삼엄했다.


환 공포증이 있는 난, 불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에펠탑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인탓에, 에펠탑에서 나오는 불꽃에 넋을 잃어가고 있었다.


축제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앞에서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달려 나왔고, 웅성웅성- 소란스러웠다.

'만약 나라면 이런 날에 테러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레 뒷걸음질 쳤다. 너무 무서우니 뇌에서 뛰어야 한다는 명령 따윈 생략된 채 그냥 다리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서있던 자리는 이미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도망친 내 자리에까지 찾아온 매캐한 냄새는 콧구멍마저 긴장시켰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공포감이었다.


세계엔 테러가 흔했다.

그것은 개인이 될 수도 집단이 될 수도 있었다. 이유도, 방법도 다양했다.

제법 테러에서 안전한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나라서 사실은 테러라는 게 와 닿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한 곳은 지구 반대편이었고, 희생자는 내 주변인이 아니었다.


엄마는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나에게 "사람 많은 곳은 가지 마."라고 하면서도, "사람들 없는 으슥한 곳은 가지 마."라고 말했다.

"여행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나는 시큰둥했다.


사실은 그러면서도 겁이 많은 나라서 항상 테러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랜드마크를 갈 때마다 무슨 수로 죽음을 피할지 구상해보곤 했다.


저 쪽에서 총소리가 들린다면 일단 엎드려서 숨을 죽여야지.

내 앞에서 차가 달려온다면 핸들을 왼쪽으로 돌릴 확률이 높으니 오른쪽으로 뛰어야지.

폭탄이 터지면 일단 뛰어서 공터로 나가자.

같은, 실없지만 실한 생각들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로 달려 나오고, 희부연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보는 순간에 나는 몸이 얼어 사람들 틈에 밀려 뒷걸음질 치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려오던 머릿속의 상황들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사람이 많이 모인 곳마다 총성 소리가 나는 작은 폭죽을 바닥에 던진다던지, 쾅! 소리를 낸다던지 하며 사람들을 공포감에 휩싸이게, 놀라게 만드는 못난 사람들을 종종 보았었다.

아직도 테러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이 도시에서는 그것이 테러와 조금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나에게는 철저하게 남이지만, 그들에게는 가족이고 친구였을 것이다.


내가 목격한 그 연기도 안타깝고 다행스럽게,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작은 해프닝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내가 있던 구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알지 못했을 이 작은 소동이, 내게는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니스에서 가슴 아픈 테러가 발생했다.


이제까지의 테러와는 기분이 달랐다.

지금껏 내가 기사로, 뉴스로 접했던 테러는 "저런, 어쩌냐."수준의 안타까운 사연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갑자기 어제 식당에서 만났던 종업원이 될 수도, 파리에 사는 내 친구 규영이가 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에 끔찍하고 무서워 마음이 아렸다.


세계평화 같은 거창하고 방대한 희망 같은 것은 품어본 적이 없지만 무고한 누군가가 개개인의 그릇된 관념으로 다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 뒤 7월의 어느 날에 나는 파리발 니스행 기차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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