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 지게꾼
여행 9개월 만에 등산이 처음이었다.
걷는 건 그럭저럭 자신이 있었지만, 오르는 데는 쥐약이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집을 출발할 때 6개월 정도의 여정을 예상했었는데 이미 해가 바뀌고 나는 27살이 되었다.
그러니까, 아직도 내가 여행 중인 건, 그리고 네팔에서 새해를 맞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는 말이 된다.
2017년 1월 3일.
무려 겨울의 한 중턱이었다.
"히말라야라니, 난 못해."
돈이 없었기에 개인 가이드나 포터는 당연히 호사였고, 성수기가 지난 후여서 함께 올라갈 동행도 없었다.
심심찮게 눈이 내리는 한겨울의 안나푸르나를 오르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사실상 차고 넘쳤지만 앞으로 나에게 남은 여행과, 자금을 고려했을 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추려내야 했다.
포카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고민하다 고른 등산용품은 싸구려 트레킹화 하나, 두툼한 등산바지 하나였다.
롯지에서 사 먹는 음식이 비싸다 들었으니 가방 안은 봉지라면과 고추장으로 가득 채웠다.
아마도 등반한 지 삼일째가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중간에 들른 롯지에서 가장 저렴한 뜨거운 물과 맨 밥을 주문해 챙겨 온 라면과 고추장을 함께 먹었고 언제나처럼 체력 저하보다 절약이 더 고됐다.
'돈 없으니 이게 무슨 꼴이람.'
옆 테이블의 남은 피자 조각을 흘깃거리고 있자니,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해가 지기 전, 오늘의 목적지까지 올라야 했기에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운이 좋게 주운 얄따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나마스떼."
지게 가득 짐을 실은 포터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며, 내 산행의 안녕을 빌어준 것이다.
나무 막대기 하나에 의존해 내 짐 하나를 온전히 짊어지고 올라가는 내가 대견해지려던 찰나였는데, 부끄럽게도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다.
"나마스떼."
나 역시 그녀에게 신의 가호를 빌어주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정수제가 들어가 소독약 냄새가 풀풀나는 물을 아껴서 나눠마셨다.
"어디까지 가세요?"
히말라야를 찾는 대부분의 트래커들이 그렇듯이 나의 목적지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였고, 롯지마다로 밑 마을의 짐을 나르는 포터들의 목적지는 저마다 달랐으니, 그녀는 나의 목적지를 짐작했겠지만 나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ABC"
성긴 영어로 그녀는 나와 같은 목적지를 말했다.
'저 짐을 메고 ABC까지 간다고?'
조금만 더 가면 설산이 이어질 터였다. ABC가 목적지라기엔 그녀의 옷차림이 너무 얇았고, 체구가 작은 그녀가 짊어지기엔 지게 안에 짐이 너무 많았다.
"실례지만 ABC까지 한번 짐을 나르면 얼마를 버나요?"
나는 참 못됐게도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리고 멋쩍게 웃었다.
"20000루피?"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주먹을 세 번 흔들었다.
2000루피.
한 번을 왕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치면, 한 달 내 쉬지 않고 일해도 10만 원이 안 되는 돈이었다.
명치 언저리에 무언가가 욱신, 하고 아렸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녀와 나는 엎치락, 뒤치락하며 두어 번을 더 만났고, 하루가 지나자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웃음과 갈라진 발뒤꿈치는 하산을 하고도 며칠 동안 눈앞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