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 비자를 구입했다.
이집트 화폐가 점점 불안정해져간다는 이야기를 주워 들었으니, 미국에서부터 조금씩 아껴온 달러가 이제부터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적당한 돈을 출금해 버스로 시내까지 나갔다.
공항에서 시내까진 꽤 거리가 있는데, 택시론 400-500파운드, 즉 우리나라 돈으로 45000원 안팎을 불렀고, 버스는 고작 2파운드였다.
공항직원에게 물어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정류장을 맴도는 모든 이집션들을 붙잡아 미리 알아둔 호스텔의 위치를 지도로 보여주며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았다.
모두가 고개를 내저을 때, 자신의 버스에 타라던 승무원 아저씨 덕에 나는 맨 뒷자리에 배낭을 메고 올라탔다.
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셨으니, 나에게 이 버스가 돌고, 돌아 도착한다는 말 또한 해줄 수 없었다. 나는 거의 3시간 동안 버스에 앉아있은 후에야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전 날은 그리스 공항에서 노숙을 했고, 오늘은 언제 내릴지 모를 버스에서 가방을 멘 채 한나절을 보냈으니 어렵게 도착해 곰팡내 나는 침대에 눕자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피라미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낙타를 타고, 끝없는 사막을 건너가면 그곳에 엄청난 크기의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피라미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피라미드를 보러 가기 위해 이집트의 지하철에 올라탔다.
낙타 대신 지하철을 타고 가면, 피라미드는 사막 대신, 도심 가운데에 느닷없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상상하던 모습과 다른 세계를 직접 봤다는 점과, 이렇게 빼곡하게 늘어선 도시 한가운데에 고대 문명이 자리하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피라미드 앞에 서면 카이로의 시내가 훤히 보이는 그 관경이 나는, 정말 좋았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더위 속에서 한참을 걸었다.
피라미드는 근처만 가도 그 모습이 장엄하게 나타나지만, 그 크기가 워낙 무시무시해서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낙타나 말을 탈 수도 있었지만 가격대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피라미드를 보다니! 내가 피라미드 앞에 서있어!"
비로소 피라미드를 마주했을 때, 나는 탄성을 내 질렀다.
돌 하나가 사람 한 명의 키보다 큰 정도이니,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의문이 생길법한 규모였다.
여행의 대부분은 실망감이 동반된다. 생각보다 멋지지 않아서,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이동이 힘들어서, 사기꾼이 많아서, 가격이 비싸서 등의 이유로.
반면, 피라미드는 내게 완벽한 랜드마크였다. 내 기대를 넘쳐서, 상상과 달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 때문에 미뤄둘 만큼 철이 들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행복.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이기적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경험.'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