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도시. 최악의 삐끼.
모로코에 온 지 거진 일주일이 되던 때였다.
여성인권이 낮은 중동권 문화지역에선 항상 조심하라던 사람들의 충고답게 밤길은 조금 궁벽했지만, 만나는 모두가 친절했고 도시 자체도 예뻤다.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건이라 함은 식당에서 주문하지 않은 오렌지주스를 권해놓고 1000원이나 더 받아갔다는 것 정도였다.
무쪼록, 페즈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모로코가 정말 좋았다.
셰프샤우엔에서 페즈로 가는 버스를 따로 예약하지 않았고 터미널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10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오니 CTM버스 창구(나라에서 운영하는 버스회사로 쾌적하지만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다.)는 어디 갔는지 안보이고 로컬버스뿐이었다. 별 수 없이 출발 10분 전인 로컬버스를 끊었다.
의자 쿠션은 의자와 분리되어있고 등받이는 90도로 세워져 조금도 눕힐 수 없었다. 밖은 뙤약볕인데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망가져 열 수 없자 땀이 줄줄 흘렀고, 앞자리와 거리는 어찌나 촘촘한지 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몰라 힘이 든 상태였다. 게다가 꾸불꾸불- 덜컹덜컹- 길은 왜 이리 안 좋은지, 운전이 인정사정없다.
'이렇게 5시간은 암만 생각해도 안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탄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 상황이야 어찌됐든 시간은 흘렀고, 페즈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의 호스트는, 나에게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타면 15다르함에 숙소 앞까지 도착할 거라고 했으니,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숙소는 시내 바로 앞이었다.
택시에서 내리기도 전에 대여섯 명의 삐끼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숙소를 찾냐며 곤니찌와, 니하오, 안녕하세요, 아시아 삼국의 언어로 말을 걸어대고, 그 와중에 택시기사는 80다르함을 요구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 호스트가 15다르함이면 온다고 했어. 나 돈 없어.”
그 말과 함께 15다르함을 내밀었더니 돈을 받아 들고는 대꾸도 없이 갔다.
혹시나 하고 던져본 말인가 보다. 그래도 그렇지 참, 터무늬 없다. 이것이 '페즈의 악몽'의 시작인지 모른 채 나는 실소가 터졌다.
페즈의 성곽 안에는 9000개 이상의 골목이 있고, GPS도 잡히지 않는 좁은 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말은 즉,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것인데 그런 지역의 특성을 이용한 호객행위가 도를 넘어섰다.
세 걸음 이상을 혼자서 걷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아주 작은 골목길에서도 어디선가 "두 유 니드 헬프?"하며 삐끼가 튀어나왔다. 두 걸음쯤마다 내 허리께에 오는 어린아이부터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까지 나에게 말을 걸어댔고, 도움이 필요없다고 소리치듯 말해도 나를 앞장서 걸어가며, 따라왔으니 돈을 달란다. 한두 번이야 무시하고 싸워 떨쳐낸다지만, 하루에도 몇십 명이 이런 식이니 사실 도시 구경은 고사하고 그냥 길을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페즈의 골목을 거닐며 수많은 모로칸들을 떨쳐내고 나니 나는 좀 고통스러웠다. 이 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도, 맘 편히 밥 한 끼를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7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Hi."
"응, 안녕!"
중동지역의 아이들은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짙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하지만 문화와 사람들은 중동과 같았다. 작은 몸집으로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면 나는 종종 무장해재가 되고 마는데, 이 경우도 그랬다.
"모로코에 온 걸 환영해!"
그는 지저분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고마워!"
"테너리찾아가는 중이지? 나 따라와!"
이럴 수가, 결국은. 또 시작이다.
관광객을 볶는 것 외엔 별다른 벌이가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려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게 가능하다니.
"제발 날 좀 내버려둬!"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잠시 주춤하는 듯하더니 순수했던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모로코에서 소리 지를 거면 왜 모로코를 왔어? 한국으로 당장 꺼져!"
그는 중지를 들어 올린 채로 날 조롱하며 뒷걸음질로 달아났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페즈에선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작업으로 가죽 염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염색공장을 '테너리'라 부르는데 나는 이 열악한 작업환경이 변태스럽게도 보고 싶었다.
숙소에서 테너리까지 약 30명의 삐끼를 어렵게 떨쳐내고 도착했는데, 그곳엔 게임의 마지막 단계에나 등장하는 '최종 보스'정도 되어 보이는 '삐끼의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가이드라 소개하며 연신 'free!'를 외쳐댔다.
"난 페즈에 지쳤어. 난 돈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자 그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걱정 마. 나는 공짜야. 대신 가게를 소개시켜줄게. 안 사도 상관없어. 그저 많은 가게들 중 하나를 추천해주게만 해줘." 하고 말했다.
그는 나를 리노베이션 중인 메인테너리를 데려갔다. 과연 혼자서 찾아가기엔 무리가 있는 위치였다. 그곳에선 가죽 염색이 진행되지 않고 있었고, 깨끗하고 정교하게 새 일터를 만들어내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작업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너무 아쉬웠다.
약속대로 나는 그가 안내하는 염색된 가죽으로 만든 신발, 가방 등을 파는 가게와 아르간 오일 가게를 방문했고 아무것도 권하지 않는 그에게 미안해 작은 오일 하나를 구매했다.
나는 우리가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산 오일 값 중 얼마만큼을 받을 것이고, 나는 테너리를 구경했다.
그렇게 다시 시내 쪽으로 향하려 할 때, 그는 나를 불러 세웠다.
"가이드해준 건, 약속대로 무료야. 하지만 네가 테너리에 들어간 입장료는 내야 해."
아.
나는 페즈가 정말 싫었다.
우리는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씨름을 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은 6000원 정도였는데, 내 하루 숙소 값이기도 했고 두 끼의 식사값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괘씸하고 화가 나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600원이었어도, 60원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입장료라니, 그런 말 없었잖아."
"네가 안 물어봤잖아. 네가 내지 않으면 내가 대신 내줘야 한다고."
"50 디람이라니, 말도 안 돼."
"내가 정한 게 아냐."
그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웃으며 "컴다운, 컴다운. 왜 행복하지 않아하는 거야?" 라며 나를 약 올렸다.
나는 결국 패배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고, 계속 내 화를 돋우는 그의 화법에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었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은, 당연하게도 테너리에 입장료 따위는 없었다는 것과 메인테너리가 아닌 작은 작업공간에서는 계속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작업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숙소의 호스트인 무하메드는 나에게 친절했다.
21살의 드레드 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었는데, 형이 운영하는 곳을 형의 부재로 본인이 잠시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난 장사에 소질이 없어. 페즈는 나와 안 맞아."라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내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웰컴 티'라며 모로코 전통차를 건네었었다.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는 이 티는 박하잎을 넣고 설탕을 대량으로 녹여먹는 기본 차로, 단 돈 2 디람 정도로 먹을 수 있었고, 적당한 레스토랑 만가도 무료로 제공되는 차였다. 처음엔 향이 강해 불편했지만, 먹다 보니 굉장히 입에 맞았다.
그는 페즈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가려는 나를 붙잡아 앉혔다. 역시나 테이블 위엔 차가 놓여있었다.
"잘 들어. 페즈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믿지 마. 네가 뭔가 사려고 하는 게 있다면 나에게 적정 가격을 물어봐줘. 그리고 무조건 80% 정도 가격을 깎아야 해."
나는 무하메드가 좋았다. 머리가 예쁘다고 하자, 원한다면 내 머리도 더 붙여서 해줄 수 있다며 조금은 멍청해 보이게 웃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페즈를 떠나는 날.
나는 무하메드에게 아쉬운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나를 포옹했다.
'제 아무리 페즈라 하더라도, 역시 따듯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구나.'
그의 품이 너무도 따듯해서, 이 도시를 향한 감정마저 녹아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킴, 너는 나에게 티 값을 지불해야 해."
그가 이렇게 말하기 전까진.
나는 지금껏 그에게 꽤 많은 박하 티를 얻어마셨는데, 그는 그것을 다 기록해놓고 나에게 돈을 청구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가격이 거의 방값과 비등했다. 그는, 페즈에서 제일가는 장사치였다. 누구도 믿지 말라던 무하메드의 말은 본인도 포함이었다.
아! 페즈.
보통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거나, 특별히 즐거운 경험이 없었다거나,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거나 하는 가벼운 이유들로 그 도시가 미워지곤 한다.
나에게 페즈는 참 미운 도시였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누군가가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수 차례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은 “글쎄.”하며 좋은 도시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게 되겠지만, “어디가 가장 싫었어?”라고 묻는다면 당장에 “페즈!”라고 대답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