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이 잠든 사이.

by 애지

임신 20주 차가 넘어가고 중기에 접어들면서 새벽잠을 자주 설치고 있어요. 배가 무거워지다 보니 어떤 자세로 자도 골반 통증이나 불편함에 깨기도 하고 호르몬 때문인지 이유 없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새벽 4시, 5시에 깨어나서 한두 시간만 있으면 출근하고는 했는데요. 최근에는 새벽 2시 30분~3시 사이에 일찍 잠이 깨고 있어요.

어제 새벽에도 잠이 깨서 말똥말똥 누워있다가 시계를 보니 2시 38분이었습니다. 새벽에 깨면 늘 하듯 전자책 어플을 켜고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잠든 남편 얼굴에 휴대폰 액정 화면 불빛을 약하게 비춰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남편 얼굴을 보기 시작하면 남편이 잠든 동안 아주 바쁜 저의 시간이 시작돼요.


잠옷을 가슴까지 올리고 배를 다 내놓고 자는 남편의 옷을 다시 잘 내려줍니다. 이불도 살짝 배에 덮어주고요. 자다가 옆으로 누우면 가슴이 눌리지 않게 팔 안에 베개도 넣어줍니다.


등을 돌리고 자면 그 겹치는 목덜미가 너무 귀여워서 가까이 다가가 등을 살포시 안기도 해요. 그렇게 누워 있으면 세상 근심 다 사라지고 마냥 행복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기분으로 마음이 가득 찹니다.

남편의 수면 습관 중에 오른손을 이마에 올리고 자는 자세가 있는데요. 그 상태로 잘 자면 괜찮은데 팔이 떨어질락 말락 한 채로 움직이면서 자는 거예요. 잠든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을 이마에 올리길래 살짝 손목을 잡고 내려주었습니다.


손을 내린 지 5초 만에 또 손을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자다가는 손이 이마에서 떨어질랑 말랑하다가 잠이 깰 것 같아서 또다시 손을 내려줬어요. 그 뒤로 두세 번을 더 손을 내려줬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제 혹시 내가 손 내린 거 기억나냐고 물었어요. 행여나 잠이 깬 건 아닌지 해서요. 그랬더니 남편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거 장난치려고 계속 올린 건데. 하하하.' 잠들어 있던 그 졸린 순간에도 장난을 쳤다는 게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함께 빵 터져버렸습니다.


한 사람을 이토록 깊게 진심으로 매일매일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저 자신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여보, 태어나줘서 고마워.
남편이 되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내일은 더 사랑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호두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