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즐기기 위해 하는 은밀한 취미를 얼마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 날은 주말 오전 간단한 식사 후 거실에 마주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남편을 봤는데 남편이 왼손으로는 책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열심히 코를 파고 있었습니다. 두 눈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집중하고 있는 듯 했어요.
그 모습이 너무 재밌고 웃겨서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컴퓨터를 하거나 뭔가에 집중할 때 코 파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코판데요~ 코판데요~ 코파기쟁이~'라고 신나게 남편을 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갑자기 코피가 났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코피난 적이 정말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코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하얀 휴지에 묻어난 선명한 선홍빛 피를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뭐지, 나 어디 아픈가. 임신해서 그런가. 몸이 안 좋나. 나 지금 무리하고 있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남편에게 바로 연락해서 지금 코피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 괜찮냐고 어쩌다 그랬냐고 물었어요. 저도 모르게 답했습니다. '그냥, 살짝 코팠는데 코피가 났어.' 남편은 다행이라며 숨을 내쉬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임신하면 혈액량이 증가하고 코 점막에 모세혈관들이 약해지기 쉽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남편은 저에게 말했어요. '코파기쟁이, 잘 잤어요?' 부부는 닮는다더니 저도 아마 남편의 코파기라는 취미를 어느새 닮아버렸나 봅니다.
코피가 나지 않았다면 남편에게 들키지 않았을텐데 코파다가 코피가 나서 들켜버렸어요.
이제 남편이 더욱 마음 편히 취미 생활을 즐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