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닌 '나의 필요'로 말하기
결혼 초 저는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여보, 왜 분리수거 안 했어요!"
"여보, 게임 영상 볼 시간에 책 읽어요!"
"여보, 말할 때 왜 주어를 안 붙여요. 무슨 말인지 되물어야 하잖아요!"
이런 말은 잔소리보다는 비난에 가깝기도 했어요. 보기만 해도 피곤하시죠. 이렇게 말하던 저는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여보, 저는 여보가 분리수거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여보, 저는 여보가 저랑 같이 책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 여보가 좋아할 것 같은데 어때요?"
"여보가 말할 때 주어를 붙여서 말해주면 저는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같은 존댓말에 요구하는 내용은 같은데 와닿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요.
차이의 비밀은 비난 없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대화 방식입니다. "왜 이렇게 했어!" 대신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로 말하는 방법인데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했어!' 대신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로 말하는 것이 왜 부부 관계에 더 좋을까요?
1. '비난' 대신 '요청'으로 전환되어 방어 심리를 줄입니다.
'왜 이렇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인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공격하는 말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듣는 사람에게 수치심,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방어나 반격을 불러와 갈등이 커집니다.
'왜 이렇게 했어!'
'내가 뭘!', '너는 안 그랬어?'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는 부부 관계를 파괴하는 '4가지 파국적인 대화 유형' 중 하나로 '비난'을 꼽으며, 이는 결혼 생활을 위협하는 가장 흔한 시작점이라고 지적합니다.
반면,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상대방이 공격받는다는 느낌 없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어 방어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렇구나. 해볼게.'
2. 문제의 초점을 상대방의 '잘못'에서 '해결'로 전환합니다.
'왜 이렇게 했어!'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 추궁에 머물러 과거에 갇히게 합니다. 이 대화는 "당신이 문제야"라는 느낌을 상대방에게 전합니다.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는 현재의 불편한 감정 뒤에 숨겨진 필요를 명확히 하고 미래의 행동 변화를 요청하는 형태입니다. 예를 들어, '왜 또 쓰레기를 안 버렸어!' 대신 '나는 집안일이 공평하게 분담되기를 바래. 당신이 쓰레기를 버려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대화의 주제는 '상대방의 게으름'에서 '공평한 분담이라는 우리의 욕구 충족 방법'으로 옮겨가 협력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여지를 만듭니다. 이는 비폭력 대화의 핵심 원리로, 비난 대신 관찰-느낌-욕구-요청의 단계를 통해 갈등 해결에 효과적임이 알려져 있습니다.
'왜 또 쓰레기를 안 버렸어!' = '상대방의 게으름'
'나는 집안일이 공평하게 분담되면 좋겠어. 당신이 쓰레기를 버려주면 좋겠어.' = '공평한 분담이라는 욕구 충족 방법'
3. 서로의 이해와 공감을 높여줍니다.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는 요청자가 자신의 취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를 제공하여, 듣는 사람이 상대의 행동 이면에 있는 진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돕습니다. 예를 들어,
'왜 이렇게 늦게 다녀!' 대신
'당신이 늦게 오면 나는 걱정되고 외롭다고 느껴져. 당신이 제시간에 와주면 좋겠어.'라고 하면,
상대방은 비난이 아닌 '나에 대한 걱정'을 보게 되어 관계의 친밀감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관계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배우자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해보면 알 수 있을 거에요.
말의 내용을 바꾸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말투와 억양도 달라집니다. '왜 이렇게 했어!'라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미간에 인상도 쓰게 되고 상대방을 노려보면서 말하게 되요. 억양도 소리치듯이 하게 됩니다.
반면, '나는 여보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 할 때는 표정도 부드러워지고 억양도 차분하게 말하게 되요.
자연스럽게 상대방도 두 말의 늬앙스와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면서 유사한 무드의 피드백을 하게 됩니다. 내가 소리치면서 짜증내듯이 말하면 상대방도 그런 피드백을 하게 되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말하면 배우자도 부드럽게 피드백을 줘요. '배우자는 나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평소 말투를 갑자기 바꾸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말투와 대화방식을 바꾼다면 평생 부부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했어!'하고 말이 나가려고 할 때,
잠시만 멈칫! 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여보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작은 변화가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