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에서 여름을 이겨내는 방법

집이 덥기 시작한다. 사월인데.

by 하지희

무시무시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겨우내 꺼두었던 아이스박스를 가동하고 그늘에 주차하기 시작하면 이제 더워질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식사 메뉴 선정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요리를 하며 생기는 열로 밴을 덥히던 시절은 가고, 이제 밴 문을 열고 조리를 하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 계절이 왔다. 그런데 저녁엔 불빛과 온기를 쫓아온 모기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지 않으려면 문을 꼭 닫아야 한다(게을리즘 덕분에 아직 방충망은...). 그러니 자연스레 조리가 필요한 음식은 낮에 해 먹고, 저녁엔 샐러드나 생채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밴을 덥히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람이 잘 드는 그늘 아래에 주차하는 것. 그런데 밴 지붕에 달려있는 태양열 패널도 그늘에 가려지니 충전이 잘 안 된다. 덥거나 아이스박스를 끄거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방법은 있다. 부지런하면 된다. 비교적 덜 덥지만 햇빛이 강한 아침엔 밴을 해가 잘 드는 곳에 주차하고, 낮에는 다시 그늘 및 으로 이동하면 된다. 아무리 바퀴 달린 집이라도 매일 두 번 이상 이사를 해야 한다니. 무척 귀찮은 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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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방법은 시원하면서도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 작년 여름엔 시원한 데다 해도 하루 종일 밤새 떠 있던 노르웨이에서 지냈고, 재작년 여름엔 고산지대 특유의 시원한 바람도 불고 해도 쨍쨍하던 알프스에서 지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노르웨이까지 가기 위해서 아주 먼 길을 달려야 했고, 알프스에 오르기 위해서 연기 나는 밴을 어르고 달래야 했다. 더위가 뭐라고. 고생을 해 가며 여름 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계절에 따라 여행지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의아해하는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에게 여름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날 아침,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눈을 뜨는 것부터 밴의 여름은 시작한다(빠르면 4월부터). 장을 보면서 유제품 코너엔 발길을 끊어야 하고, 아이스크림 코너를 좀 더 애절하게 바라보게 된다. 장바구니에 감자나 당근 대신 냉국을 만들 오이와 간편한 토마토가 그득하다. 커피를 끓이다 말고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상상을 하다 좌절한다. 밤새 밴 안에서 퍽 툭 탁 벌레 잡는 소리의 연주가 흘러나오면 이제 남은 다섯 달의 여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밴에서의 계절은 대략 6개월의 여름과 5개월의 겨울 그리고 개미 눈물만큼의 봄가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노르웨이나 알프스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그리고 이 모든 계절을 에어컨 없이(우리 밴은 많이 낡아서 자체 차량 에어컨도 없다), 히터 없이 보낸다. 아무리 북쪽으로 산속으로 간대도 정말 더울 땐 어떻게 할까?

그냥 덥다고 욕하면서 지낸다. 매년 갱신하는 최고 온도를 보면서 지구를 걱정하면서 보낸다. 그러다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오는 카페에 가서 호강하다가 진짜 더위, 진짜 현실을 다시 마주하고 우리와 다른 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 더워 죽을 것 같아서, 정말 이렇게 매년 더 더워지는 게 무서워서, 뭐든 해 본다. 일단 매연이 미안해서 5km 떨어져 있는 마트에 걸어서 간다. 바나나를 사려다가 몇 천 킬로미터를 더 달려서 또 이곳에 와야 할 바나나가 생각나서 내려놓는다. 사과 주스를 사려다가 결국 다 태워질 팩이 신경 쓰여서 그냥 즙이 많은 사과를 산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으니 적은 물로 샤워를 하고 가만히 바람을 맞는다.


이러다가 덜 더워지고 좀 살만해지면 또 잊고 별생각 없이 잘 산다. 말짱 도루묵 아니냐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온다네. 분명 집 안인데 입김이 솔솔 나온다. 뉴스에서는 역대 최하 기온이라고 겁을 준다. 그럼 그때 또다시 지구를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한다. 집이 너무 덥고 추워서 힘들지만 덕분에 현실을 쉽게 자주 자각할 수 있었던 지난 2년이었다. 올여름, 우린 노르웨이도 알프스도 아닌 터키(어쩐지 이름에서부터 '더움'이 묻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에서 지내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정말 정말 무섭다. 더위가. 올여름이 지나면 난 환경 단체에 이력서를 넣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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