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라이퍼와 친해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 * 밴라이퍼 : 밴에 사는 사람 ) "오늘 우리 집 마당에 밴 세워두고 샤워도 하고 가요."라는 말을 해준다면 당신을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날릴지도 모른다. 밴에 살아도 씻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좀 귀찮을 뿐. 도무지 '아 심심한데 샤워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솔직히 이건 핑계다. 지금껏 이런 생각 해 본 적 없다.)
여름을 기준으로 샤워를 하기 위한 과정은 대략 이렇다. 일단 10리터 태양열 샤워 팩에 물을 담는다. 햇볕에 둔다. 기다렸다가 물이 데워지면 샤워텐트를 설치하고 씻는다. 끝. 별거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야외 생활 중이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1. 태양열 샤워 팩에 물을 담는다.
물이 부족한 날이 있다. 샤워 팩에 한번 담은 물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 씻느냐 마시느냐. 결정해야 한다.
2. 햇볕에 둔다.
며칠째 날이 흐리다. 그렇다고 날이 시원한 것도 아니다. 물은 안 덥혀지는데 온 몸은 끈적끈적하다. 찬물에 씻어야지 뭐.
3. 샤워텐트를 설치하고 씻는다.
도심 한가운데서 샤워텐트를 설치하고 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텐트를 설치할 만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가 늘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이러니 그저 옷을 벗고 샤워기만 들면 되는 욕실에 누군가 초대한다면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영화 《와일드》에서 여주인공 셰릴이 사막 한가운데를 걸으며 밀크셰이크를 남겼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듯 나도 욕조가 있던 집에 살았으면서도 목욕하길 귀찮아했던 나를 찾아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다. '후회하기 싫으면 얼른 가서 씻어. 언젠가 물 1리터를 눈 앞에 두고 마시느냐 씻느냐 고민하는 날이 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