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집에 산다는 것

세상에서 제일 낡고 작은 고급스러운 집

by 하지희

난 가끔 우리 집이 너무 고급스럽다고 생각한다. 2002년식에 24만 km를 달린 밴이 도대체 뭐가 고급스럽다는 걸까.


처음 낡은 밴을 집으로 삼았을 때, 다른 멋진 신식 밴들이 부러웠다. 반짝이는 광택도 부럽고, 시동을 걸면 덜덜거리지도 않아서 부럽고, 한쪽 문이 고장 나서 경찰차처럼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부러웠다. 조금 더 투자해서 더 나은 밴을 살걸. 괜히 밴의 흠집들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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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낡은 티를 감추기 위해 도색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밴은 유럽 곳곳을 다니며 여기저기 더 많은 상처가 생겼다. 이제 더 낡은 밴인데, 나는 어째 우리 밴이 너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좀 더 낡고 작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밴에, 우리 집에 애정이 생겨서 그렇다. 보면 볼수록 예뻐 죽겠고, 벌써부터 밴 말고 다른 집에서 살 생각에 아쉽기까지 하다. 밴이 좀 더 낡고 작았으면 쉽게 정을 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마저 든다. 누가 봐도 못난 신생아를 보고 너무 예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우리 집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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