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내가 미웠던 이유

무슨 자격으로 마음이 아픈 걸까

by 하지희

지난 5일 간 아테네에서 지냈다. 조용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무료 주차장에서 지냈지만 걸어서 10분이면 시내 한복판에 갈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아테네에선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골에서는 경제 위기를 맞은 그리스를 그렇게 가까이 느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아테네에서는 무너져가는 혹은 무너진 그리스 경제를 매 순간 마주했다.

살아남은 거라곤 대형 자본의 기업들과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 뿐. 번들거리는 2층 시티 투어 버스 옆으로 지나가는 낡디 낡은 공공 버스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한 나라의 수도가 맞나 싶을 만큼 버려진 건물들이 가득했고, 보도블록은 죄다 깨졌고, 표지판이며 신호등이며 낙서로 가득했다. 낡은 도시가 불쾌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자본과 자원을 투입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걸로 갈아치우는 도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화려한 장난감 가게 바로 앞에서 마른 빵을 뜯어먹고 있는 부랑자 아이들을 꽤 자주 만날 때마다 견디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그리스에서는 사람을 먼저 마주했고 그들의 순박함에 감탄하기 바빴다. 아테네는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였다. 앞으로 더 많은 도시와 나라들이 이런 형태를 띠겠지.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 힘 있는 자들에게 사회의 주권이 넘어간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조금 무섭다. 솔직하게 말하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무섭다.

어제 아테네를 빠져나와 산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다른 세상에 온 듯 평화롭다. 어제의 아테네는 잊고 평화로운 하루를 즐기는 내가 가증스럽다. 언젠가 아픈 현실에서 쉽게 눈을 돌리기 힘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치 그날을 기다리는 듯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내가 밉다. 아테네에서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을 원망하다 보면 화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그러는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잖아.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을 계속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기회 비슷한 것이 왔을 때 조금 덜 망설이고 팔을 걷어붙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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