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처지에 전망 좋은 방이 생길 수 있을까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차경’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처럼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도 집의 일부로 여겼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빌리고 싶은 경치보다는 가리고 싶은 경치를 가진 집에 더 자주 살았다.
‘내 처지에 전망 좋은 방은 무슨.’ 학생이고 돈도 없던 시절(지금도 돈은 없지만)의 나에게 전망은 사치였다. 외국인 신분인 나에게 허락된 집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제일 저렴한 방만 구해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전망은 웃통 벗은 아저씨들이 북적대는 공사장이거나, 페인트칠이 벗겨진 앞 동 기숙사 건물이거나, 눈을 마주치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할머니가 사는 창문이었다(할머니도 나를 보며 전망에 대해 한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속 아리에티의 엄마가 컴컴한 마루 밑 전망 대신 바다 풍경이 그려진 커튼을 달았 듯 나도 최대한 예쁜 무늬가 그려진 커튼을 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학생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외국인이니까 이런 전망을 보며 살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누르고 있는 우울과 불안감이 전망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도 전망 좋은 방이 찾아왔다. 6년 전의 난 방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집들은 하나같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셋방이었고 그마저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당장 다음 주에 방을 비워줘야 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운 좋게 다니던 학교에서 방을 하나 소개받았다. 받아 든 서류를 보니 집 크기에 비해 방세가 조금 높긴 했지만 사정이 급했다.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 큰 하자가 없으면 바로 계약할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큰 기대 없이 열어젖힌 문 너머 내 눈에 들어온 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내가 이런 집에 살 수 있다고? 방세가 잘못 적힌 게 아닐까?’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아마 내 머릿속에는 ‘나는 아직 이런 집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던 게 아닐까.
1년간 커튼도 달지 않고 밤낮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재미로 살았다. 이상하게도 이 집으로 이사 온 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좋은 아르바이트도 구했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남자 친구를 만났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기분 좋게 만드는 전망을 매일 바라본 덕에 내 안의 우울과 불안감을 모르는 새 조금씩 덜어낸 건 아닐까. 드라마 <시그널>에서 차수현 형사가 피해자들이 매일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보고는 이야기한다. “피해자들이 걸었던 이 길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전단지랑 쓰레기뿐이고 살아있는 건 풀 한 포기조차 없어요. 저라도 매일 이 길을 걸으면 우울해질 것 같아요.”
매일 걷는 길, 매일 사는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당장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환경에 스스로를 방치하고 살았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갈수록 더 우울해진다 싶을 때 나는 환경을 바꾸었다. 꼭 돈이 많지 않더라도 찾아보면 방법은 있었다. 집세가 조금 더 저렴한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거나,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매일 6층을 오르내린다거나, 바퀴 달린 집에 산다거나. 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어도 조금은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창 밖을 바라볼 때 살짝 미소를 짓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바깥을 바라보고 있자면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전망이 나쁜 집과 좋은 집에서의 매일은 꽤 다르다는 걸 몇 번의 이사 끝에 깨달았다.
지금은 우리 집이 전망 좋은 방이 될 때도, 아닐 때도 있다. 매일 창밖 풍경이 바뀐다. 사치스럽게도 전망이 좋은 때가 대부분이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으로 소복하게 눈 쌓인 자작나무 숲을 보고 있자면, 파도가 잔잔하게 치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언덕 아래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자면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다. 가난한 우리에게 전망 좋은 방이 잘 찾아오지 않길래 우리가 전망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지금도 이사를 다니며 머물 장소를 정하는 꽤 중요한 기준은 전망이다. 도로도 울퉁불퉁하고, 근처에 편의 시설 하나 없어도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이 창 밖으로 보이는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는다.
작은 밴이나 승용차밖에 진입하지 못하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 눈물 나도록 멋진 정말을 갖게 되는 날엔 “오늘 우리 집 창밖 풍경 정말 멋지다. 여긴 아무리 돈 많은 부자들도 절대 못 사는 집이야.”라며 괜한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이런 풍경을 만나면 하루 종일 바깥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다. 보려고 했던 영화도 미루고 싶을 만큼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계속 밴에 살고 싶은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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