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랜 꿈이 하나 있다. 찻집을 여는 것. 그런데 그곳에서 차를 준비하는 이는 내가 아니다. 찻집 주인은 바로 나의 엄마. 난 엄마를 위한 찻집 그림을 가끔 그려보곤 한다. 요즘은 덜 그리지만, 엄마가 힘들고 지쳐 보였을 때 난 내 노트를 엄마의 찻집 그림으로 가득 채우곤 했다.
오랜만에 들춰본 노트 구석에 이렇게 쓰여있다.
‘(...)그리고 작지만 아늑한, 찻집을 하나 여는 거. 엄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손님이 많지 않아도, 엄마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곳. 엄마가 종일 일하는 곳이니 엄마에게도 아늑하고 계속 있고 싶은 곳으로. 적당한 담도 쌓고, 테라스도 만들고, 작은 텃밭도 만들고,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상상한다. 행복한 상상. 아침에 엄마가 일어나 음악을 틀고 커피를 끓이고 밖으로 산책 간다. 잠깐 마당에 풀도 보고, 경치도 보고. 그러고 씻고, 단정하지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9시. 엄마는 천천히 디저트 준비를 한다. 타르트도 굽고, 간단한 티푸드를 만든다. 10시. 카페로 가서 오픈 준비를 한다. 어닝을 열고, 입간판을 내놓고, 대문을 열어둔다. 11시. 오픈 시간. 손님을 기다리면서 마실 차도 타고, 컴퓨터도 하고, 책도 읽는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오고, 서비스하고, 정리한다. 가끔 친구가 찾아와서 같이 차 한 잔도 나누고 얘기도 나눈다. 저녁 6시. 평일이라 일찍 마감한다. 대문을 닫고, 입간판을 들이고, 어닝을 걷고, 청소하고 음악도 조명도 끄고 문을 닫는다. 겨울 시즌엔 문을 길게 닫고 휴가도 가신다. 행복한 풍경이다.’
엄마가 혼자서 만들고 보관하기도 편한 음료나 디저트도 구상했다. 겨울이 다가올 시즌엔 매일 조금씩 뱅쇼(와인과 과일, 향신료를 함께 뭉근하게 끓인 음료)를 끓여두면 온 카페에 향이 가득하겠지. 타르트는 실패할 확률이 낮은 안정적인 레시피인 데다 계절 과일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좋겠지. 스콘도 찻집에 빠질 수 없지. 홍차는 샘플을 담은 작은 시향 박스를 만들어 두면 엄마도 손님들도 편할 거야.
손님으로 북적이는 찻집이 아니라, 엄마도 중간중간 편한 자리에 앉아 차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엄마의 서재 같은 찻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엄마를 생각하면 자주 뭔가가 아쉽다. 엄마는 좀 더 잘나도 괜찮고,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서재 같은 찻집을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애초에 엄마에게 찻집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왜 찻집일까? 서점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부동산도 있고, 선택지는 많은데. 서비스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무례한 손님에게 치이는 날도 있을 테고, 화장실 청소 같은 불편한 일도 해야 할 테고, 들쑥날쑥한 수입에 마음 졸이는 것도 힘들 텐데, 왜?
다른 일을 다 떠나서 꼭 찻집이어야 했던 건, 향기 때문이었다. 내가 홍차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집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잠깐 살았던 작은 아파트의 1층엔 유명한 홍차 가게가 있었다. 불쾌한 지하철 냄새를 빠져나와 집 근처 골목을 돌면, 항상 흘러나오는 향기에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홍차의 향에 빠져들었고, 삭막했던 파리 생활에서 적잖은 날을 그 향에 기대어 살았던 기억이 있다.
커피의 향이 ‘일’이나 ‘집중’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면, 홍차의 향엔 ‘휴식’이라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보통 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찻집에 가면 적당한 크기의 티팟에 차를 내어 주는데, 이때 차는 나오기 직전에 넣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나오자마자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라, 4-5분 정도 잠시 기다려야 한다. 잠깐의 인내 후 첫 잔을 따를 때, 그때까지 잔잔하게 퍼지던 차의 향이 갑자기 와르르 밀려온다. 그 순간 이 차의 향기 외엔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참 얘기 중일 때라도 ‘와, 이 향 좋다!’ 하고 상대방이 얼굴을 들이밀게 하고, 바깥 풍경에 취해 있던 중이라도 찻잔 속 풍경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있던 때라도 한 소절 정도 놓치게 만드는 힘이 있는 향인 것이다.
그런 향이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 퍼지는 곳에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손님에게 시향 박스를 열어줄 때, 홍차 통을 열어 한 스푼 풀 때, 손님이 홍차를 잔에 따를 때, 다 마신 티팟을 열어 씻을 때. 알고 있다. 그런 향을 맡는 사치를 부리기 위해선, 그때그때 시향 박스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수고와 떨어지지 않게 적정량의 홍차를 주문하는 수고, 차와 함께 낼 디저트를 만드는 수고, 적지 않은 양의 설거지를 하는 수고 등이 따라붙는다는 걸. 휴식의 향을 맡게 해드리고 싶으면 그냥 엄마가 자주 찻집에 자주 가서 쉬는 게 제일 좋다는 걸.
그래도 가끔은 꿈꾼다. 엄마가 어떤 공간의 주인이 되어 누군가를 맞이하는 상상을. 그 어떤 공간은 위안이 되는 향이 가득한 곳이었으면. 작지만 알록달록한 차 통이 빼곡히 놓인 선반이, 카운터에서 잘 보이는 곳에 달린 커다란 통창이, 가끔 엄마의 친구가 놀러 와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는 작은 찻집을 꿈꿔본다.
엄마는 엄마를 위한 일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엄마만을 위한 음악 리스트 만들기, 좋아하는 책만 놓인 책장 만들기,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베이킹, 최적의 자리에 놓은 창가 앞에 자신만의 테이블과 의자 놓기 같은 것들. 그런데 여기에 ‘손님’이라는 핑계가 있다면. 카페를 채울 잔잔하고 따뜻한 음악 골라내는 것, 손님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책들을 책장에 꽂는 것, 차와 함께 내면 좋을 디저트를 만드는 것, 손님에게 최상의 풍경을 선사하는 동시에 손님과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카운터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를 놓는 것. 손님을 위한 일인데, 엄마도 그 안에서 함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꿈이 조금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찻집에 손님으로 가는 것. 가서, 엄마가 요즘 빠져있다는 음악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엄마가 요즘 밀고 있다는 차를 맛보고, 엄마가 요즘 추천한다는 책을 읽고, 엄마가 요즘 자주 만난다는 단골손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 이야기, 아빠 이야기, 가족 이야기 말고, 엄마 이야기를 더 자주 듣고 싶다. 엄마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곳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싶다.